2002. 11. 29. 15:01

[] 또다른 대화

[날 사랑해선 안돼]
[뭐야. 그 왕자병 환자같은 말투는.]
[어차피 난 떠나야 하는 존재. 네가 나를 사랑해서는 안된다.]
[누가 너 사랑한대? 웃겨. 자기 혼자서.]
[...가란..]
[떠날테면 지금 떠나라구. 가! 잡지 않을테니.]
[.....]
[젠장. 뭐야. 어차피 헤어져야 하니까 아예 애초부터 사랑따위에 빠지지 않겠다? 지금 도망치는 거야? 응?]
[....내가 네 곁에 있을 시간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다. 이별이 확실한 만남이었어.]
[그걸 내가 몰랐던 것은 아니야. 처음부터 이별은 각오하고 있었고.
하지만 지금 네 말은 헤어지는 것이 두려우니 사랑하는 것조차도 두렵다는 것 아냐? 겁쟁이 같으니라구.]
[인간에겐 망각이라는 축복된 선물이 있다. 아무리 아픈 기억도 시간이 지나면 망각으로 치유되어 아련한 추억으로 변하지.]
[잘난 척 하지 말아. 축복된 선물? 하. 그럼 나중에 마음아파하지 않을 거라도, 지금 당장 아픈 마음은 어떡할 건데? 그동안 참고 기다리라구? 다 잊어버려서 내가 기억하고 싶은 것만 남기고 소중한 순간들이 모두 빛바랜 낡은 사진처럼 되어버릴때까지 그렇게 살란 말이야?]
[적어도 내겐 망각이라는 능력이 없어. 그것은 인간에게만 존재하는 인간만의 능력. 망각할 수 있기에 인간은 절망에서 일어설 수 있는 것이다. 그 참담한 절망을 잊을 수 있기에 다시 희망을 갈구할 수 있는 것이지. 나는 언제까지고, 이 세상이 끝나는 그 날까지 모든 아픔들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그렇게 살아야 한다. 내겐 추억이 아름답게 남을 수조차 없어.]
[웃기지마. 사랑은 나 혼자 하는 줄 알아? 너 역시 나를 사랑하잖아. 그러니까 지금 그런 우습지도 않은 얘기를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하는 거잖아. 그럼 잊을 수도 없는 그 아픈 기억들 모두 끌어안고 세상이 끝날때까지 청승맞게 살지 그래?]
[...]
[도망치지 마. 제발. 라스야다. 도망치지마. 헤어지는게 무섭다면. 두렵다면. 언젠가 우리가 헤어져야 한다는 사실이 그렇게 두렵다면. 제발 도망치지 말아줘. 내게서. 그리고 사랑에서. 그렇게 두려우면. 두려운만큼 헤어지기 전까지 나를 사랑해줘. 우리 헤어져야 한다는 것 알아도 헤어짐이 두렵지 않도록. 떨어져 있어도 두렵지 않도록. 그렇게 사랑하자. 응? 지레 겁을 먹고 그렇게 사랑을 거부하지 말고. 헤어질 때 눈물조차 나지 않을 만큼 사랑하자. 그러면 되잖아? 끝이 두렵다고 시작조차 안하려는 거야? 라스야다. 내가 아는 너는 이런 겁쟁이가 아니었어. 그러니. 우리 두려워하지 말고 사랑하자. 아니 두려워만큼 서로를 더 사랑하자. 응? 라스야다..사랑해...사랑한단 말야..]
[가란..나는..두렵다..또 다시 상처입을 것이. 과거에 집착하는 것은 아니지만 예전에 받은 상처의 아픔이 고스란히 남아 나를 괴롭히고 있어. 이이상 상처를 받는다면 나는 견딜 수 없을거야. 나는 그래서 인간이 부러워. 잊을 수 있는 인간이..]
[그렇게 인간이 부러워? 그럼 인간이 되면 되잖아 이 바보 자식아! 인간이 되어서 모두 잊고 사시지 그래? 넌 잊을 수 없으니까 그 순간의 모든 감정들을 잘 알고 있잖아. 언제라도 생생하게 다시 꺼낼 수 있잖아. 네 상처 내가 아물게 하도록 해주면 안되는거야? 내가 널 치유할 수는 없는거야?]
[....자신없다..]
[.......]
[가란..]
[저리 치워. 당장 어디라도 꺼져버려. 네 임무따위 집어치우고 어서 꺼지란 말야! 네가 온 곳. 네 고향으로 당장 꺼져버려! 너같은 가라얀은 필요없어.]
[가란...]
[당장 가래도!]
[.....내가 이곳에 오기 전에 있던 곳은 이곳이 아니지만. 내 고향은 이곳이다. 적어도 난 가라얀으로서 임무를 마치기 전까진 네 곁을 떠나가지 않아.]
[....]
[사랑한다. 가란. 내가 너를 사랑하기에 난 두려운 것이다. 오래전부터. 너와 내가 이 세상에 창조되었을 때부터. 너를 사랑해왔어. 그렇기에 예전에 맞았던 그런 결말이 올까봐 나는 두려운 거다. 너는 기억하지 못하겠지. 이제 인간이기에. 하지만 나는 인간이 아니기에 모든 것을 기억한다. 그래서 두려운 거야. 나 역시 과거따윈 모두 집어던지고 싶어. 그렇지만 눈을 감으면 그 당시 기억 하나하나가 모든 감정이 생생하게 되살아나 나를 다시금 게헨나로 떨어지게 한다. 그 소름 끼치는 어둠이 가득 들어찬 그곳으로 말야. 하지만 말이지. 아무리 소름끼치는 게헨나라 하더라도 너를 생각하면 저 딜문과도 같은 곳으로 바뀌고 말아. 그 깊고 깊은 어둠 속에 네 모습이 떠오르면 수많은 망령들과 구역질나는 어둠따위는 감히 범접할 수 없어. 나 역시 너를 사랑해. 하지만. 사랑하는 만큼 두려워지는 것은 어쩔 수 없어.]
[두려운만큼 나를 더 사랑해줘. 그러면 돼. 그것뿐이야.]
[가란..]
[네가 가는 곳이면 어디든지 갈 수 있어. 내 곁에 네가 있고 네 곁에 내가 있으면 아무리 게헨나라고 해도 갈 수 있어. 그러니 너와 함께 갈거야. 내 몸이 갈기갈기 찢기고 산산히 부숴진다 해도 네 곁에 있을 수만 있다면 함께 가겠어. 내 영원한 영혼의 반쪽인 너와 함께. 네가 있으면 그 어떤 것도 두렵지 않아. 죽음까지도. 네 곁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차라리 행복일꺼야.]
[너와 헤어지는 것 따윈 두렵지 않아. 단지 내가 돌아감으로써 네가 받을 상처 때문에, 네가 슬퍼하는 것을 내가 견딜 수 없기에. 그래서 두려운 거야.]
[그렇다고해서 내가 상처받을 기회까지 박탈해버리는 것은 네 권리가 아니야. 적어도 난 너를 사랑할 권리가 있어. 너와 헤어져서 슬퍼하는 것은 네 몫이 아냐. 그건 내 몫이야. 내가 너를 사랑했기에 당연히 겪을 수 있는 일이라구. 그리고 그깟 슬픔따위. 네가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사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야. 너만 생각하면 그 정도 슬픔은 이겨내고 살아갈 수 있다구. 네가 그랬지. 망각은 인간의 가장
축복받은 선물이라고. 나 역시 인간이야. 그 정도 슬픔 따위는 잊을 수 있어. 그렇지만 널 사랑한다는 사실은 잊지 않아. 네가 언제나 어딘가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으니까. 우리를 연결해주는 끈은 그 누구도 쉽게 끊어버릴 수 없으니까. 너도 알잖아? 그 끈이 얼마나 튼튼한지. 그러기에 우리가 이렇게 수없이 긴 세월을 지나서 지금 이 순간에 함께 있을 수 있는 거라는걸. 사랑해. 라스야다. 너와 헤어지는 것은 슬프겠지만 두렵지는 않아. 사랑해.]
[가란...]
[라스야다...]
[가란...사랑해..나를 그 이름으로 부를 수 있는 존재는 가란 너 뿐이야. 사랑해..]
[라스야다....]
[이젠 두렵지 않다. 잊을 수 없다면 이 세상이 끝나는 날까지 너를 가슴에 품고 살아가겠어. 그리고 절대 잊지 않을테다. 네가 언제 어떤 모습으로 태어나던 간에 꼭 찾아내겠어. 네 영혼의 향기를 절대 잊지않고 기억해서 너를 찾아내겠어. 네가 나를 모른다면 알아차릴때까지 몇번이고. 몇번이고 네가 다시 태어나서 나를 알아볼 그 때까지 너를 기다리겠어. 네가 나를 알아볼때까지 몇번이고 사랑한다고 말해주겠어. 네가 나를 기억해낼때까지. 이렇게 다시금 만날 때까지.]
[사랑해 라스야다.]
[가란 사랑해..]
[사랑해...]
[사랑...]
[사..]
[..해...]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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