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11. 12. 00:58

[] 빼빼로 데이? 난 가래떡 데이다.

아침 무렵, 친구에게 문자가 하나 왔다. '친구야, 빼빼로 대신 하트야.' 비몽사몽 간에 받은 문자라 한참 후에 잠에서 깨어나 답을 보냈다. '빼빼로 대신 가래떡이야. 즐거운 하루 보냈길 바라.'

그래, 11월 11일을 빼빼로 데이라고 챙긴 지 벌써 몇 년이 지났다. 내가 기억하는 가장 오래된 빼빼로 데이는 고등학교 1학년 때인 1998년인 것 같다. 학교 아래 빅마트에서 잔뜩 사서 애들이랑 돌려먹었던 기억이 나는 걸 보니. L 제과 회사의 상술이라고 중얼거리면서도 오도독오도독 맛있게도 빼빼로를 베어먹었던 기억이.

10년이 지난 오늘에서야 알았다. (이제는 자정이 지나 어제긴 하지만, 아직 생활 리듬으로는 오늘로 본다. -_-;) 오늘이 바로 '농민의 날'이라는 사실을.

11월 11일이 되기 며칠 전부터 온 동네 편의점이고, 온라인 상의 웹사이트고 간에 '11월 11일은 빼빼로 데이'라고 쓴 펼침막을 커다랗게 여기저기 걸어놓는다. 그 어떤 곳도 '11월 11일은 농민의 날'이라 말하는 곳은 없었다. 하지만 생각해보자. 빼빼로는 먹지 않아도 살 수 있다. 그렇지만, 농민 분들이 계시지 않으면, 농사를 짓지 않으면 우리는 무얼 먹고 살며, 어떻게 살 수가 있을까. 그 생명줄을 붙들어 놓지 않으면.

다른 친구랑 약속을 했다. 다른 사람들은 빼빼로 데이라고 목소리를 높여도, 우리는 '가래떡 데이'라고 하자고. 초콜릿을 묻힌 밀가루 과자를 먹는 대신에, 꿀이나 조청을 묻혀도 좋고, 막 뺐을 때 그냥 먹어도, 딱딱하게 굳은 걸 잘라 노릇노릇 불에 구워 먹어도 좋은 가래떡을 먹는 날로 만들자고.

어떤 거창한 내용도 아니고, 대단한 결의도 아니지만, 폭락해가는 농산물 가격에 스스로 목숨을 끊고, 나날이 늘어가는 빚에 한숨 역시 덩달아 늘어가는 농사짓는 분들을 위해 조그만 일이라도 하고 싶었다.

추곡수매가 없어져 더 이상 벼농사를 지어도 나라에서는 사주지 않고, 추곡수매 대신 생긴 쌀직불금은 땅주인들이 다 받아가버리고, 수입 농산물은 밀려들어오고, 인기 좋다는 작물은 너도나도 모두 지어 가격은 폭락해버리는 팍팍한 현실을 밭갈듯 확 갈아엎어버릴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는 조그만 것이라도 하고 싶었다.

오늘은 비록 김이 모락모락나는 하얀 진짜 가래떡을 먹은 건 아니지만, 비록 손전화 문자로만 가래떡을 보냈지만, 언젠가는 11월 11일이 빼빼로 데이가 아닌 '가래떡 먹는 농민의 날'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천천히 멈추지 않고 걸어가고 싶다.

이 글을 읽는 다른 분들도 가래떡 먹는 날을 함께 한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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