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9. 9. 21:16

[] 나는 운동권?

요즘 들어 '라흐 너~ 운동권이야~'라는 말을 간혹 듣는다.그런 말 들으면 그냥 '내가 무슨~ 나는 선량한 일반 시민이야' 이러면서 넘기곤 한다. 기분이 나쁘거나 해서가 아니라, 실제로 열심히 활동하시는 분들에게 죄송해서다. -_-; 나는 입만 살아있으니까. ㅎㅎ;;

여하간, 위에서 말했던 운동권.
그게 무슨 의미일까. 내가 생각하는 그 '운동권'이라는 말은 '단절'의 의미이며 '연대'의 부정이다.

민주주의 사회의 구성원이라면 누구나 당연히 할 수 있고, 해야하는 일을 '운동권'이라는 소수에게 넘겨버림으로써 단절과 배제를 부르는 일이다.

'우리'가, 혹은, '내'가 해야할,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특별히 '운동권'이라 이름지어진 사람들만이 해야하고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떠넘겨버리는 일이다.

대체 운동권의 실체가 뭔가? 실체가 있기는 한가? 그 말은 '촛불 집회의 배후'만큼이나 공허하고 유령같은 말이다. 사람들에게 더럭 겁부터 집어먹게 하는 말이다. 사회에 관심을 갖고 직접 행동하는 데에 거리낌을 주는 말이다. 사회에 관심을 갖고 활동하는 일이 자기 생활 속에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생활을 오롯이 사회 참여에만 바쳐야 하는 것처럼 호도하는 말이다.

얼마 전, '아나키즘, 대안의 상상력'이라는 책에서 스위스의 어느 마을 이야기를 읽었다. 그 마을 주민들은 마을의 일을 결정하는 일에 일상적으로 관심을 갖고, 학교에 가기 전이나 다녀와서, 직장에 가기 전이나 다녀와서 일상적으로 투표를 한다고 한다. 물론, 규모가 작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내가 속한 사회에 대한 일상적인 관심'이다.

내 재산을 불리기 위한 재테크 지식에만 관심을 갖고, 더 멋진 외모를 갖기 위한 스타일링법과 쇼핑 정보를 얻고, 트렌드를 따라잡기 위해 각종 제품들의 정보를 수집하는 일 등 '소비를 위한 일'에는 열성과 관심을 갖고 자신이 많은 것을 안다는 '착각'에 빠져 살기가 일쑤이다. 미안하지만, 그런 일들에 빠삭하다고 해서 유식한 게 아니다. 오히려 무식한 거다. 그런 쪽에 관심을 갖고, 유행에 민감할 수록 지배 계층이나 자본의 이데올로기에 포섭되기 쉬우니까. '우리'는 없고 서로 경쟁하는 '나'와 '남'만이 존재하는, 더 많이 팔기 위한, 혹은 더 강하게 지배하기 위한 수단으로써의 정보만을 얻게 되는 거다. 차마 '논리'라고도 할 수 없는 '욕망'으로만 가득차서 욕망 그 자체로 존재하는 정보만을. 실제 자기가 속해 있는 상황이나 계급은 인식하지 못하고. 더 많이 갖고, 가진 것을 지키기 위한 욕망에 가득차기 쉬운거지. '사회'에 대한 관심보다, 불합리한 것들을 고치려는 의지보다, 이미 내가 속한 곳의 시스템에 대해서는 의심없이 그저 더 좋은, 높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아귀다툼에 몸을 비벼넣으면서. 겨우 자리를 차지하면 그나마 안도하면서.

사실, 저 위에서 내가 말한 거긴 하지만 '선량한 일반 시민'도 웃기는 말이다. 민주 사회의, 시민 사회의 구성원인 '시민'이라면 응당 사회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이니까. 운동권과 시민은 구분되어야 할 개념이 아니다. 담장으로 갈라놓아야 할 것이 아니다. 운동권 역시 선량한 시민 가운데 한 사람이며, 선량한 시민 역시 운동에 참여할 수 있는 거니까.

운동권과 일반 시민을 가로막는 장벽이 없어지고 하나로 어우러져야 한다. 저건 남 일이야~라고 외면해버리는 사람들과 왜 우리를 알아주지 않는거야라는 사람들이 결코 '저 사람들/저들'이라고 구분될 사람들이 아니라, 결국 같은 '우리'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모두들 잘 알만한 글귀를 인용한다.

마틴 니묄러 “그들이 왔다”(Martin Niemöller, "They Came,")

“제일 먼저 그들은 공산주의자를 잡으러 왔지만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으므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은 노동조합원을 잡으러 왔지만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으므로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은 유대인을 잡으러 왔지만 나는 유대인이 아니었으므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그들은 나를 잡으러 왔지만 나를 위해 말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미셰린 이샤이의 ‘세계인권사상사’에서 재인용)


'끄적끄적 낙서장'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후  (2) 2008.09.17
[] 깨소금  (0) 2008.09.16
[] 여튼 해결  (2) 2008.09.04
[] 하아 정말.  (4) 2008.09.04
[] 쇄골이...  (0) 2008.09.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