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10. 26. 23:52

[] 미혼여성이 산부인과에 잘 가지 않는 이유

먼저 제 글에 관심 보여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 

하지만 이 글을 퍼가실 분들께 부탁을 좀 드리려고 합니다. 이 글이 더 많은 분들께 읽혀지는 일은 저도 바라는 일이긴 하지만, 글을 퍼가실 때 꼭 댓글이나 방명록으로 어디로 퍼가신다는 사실을 제게 알려주셨으면 합니다. 또한, 퍼가신 후에는 원글 작성자가 '라흐쉬나'라는 것을 꼭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제 글은 모두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라이센스를 따르고 있습니다.

===================================================================================================
간만에 다음 블로거 뉴스에 들어가보니 산부인과 이야기가 올라와 있다. 트랙백을 주르르 따라가보는데 대부분 기혼 여성분들이시고, 미혼 여성이 쓴 건 단 두 개 뿐이다. 아무래도, 성에 대한 이중잣대 때문이겠지. 미혼이면 성에 대해 순결 - 이라고 하면서 사실 '무지'를 바라지만 - 해야한다는.

스물다섯이 된 이후부터 산부인과에 가서 진료를 정기적으로 받아야겠다는 생각은 줄곧 했었다. 난소낭종과 자궁근종 가족력이 있기 때문에, 20대 중반부터 꾸준히 검진을 받는게 좋겠다는 생각을 했으니까. 그러다가 2006년 12월에 배란혈이 비친 것 때문에 진료를 받으러 갔었다. 처음 있는 일이라서 겁이 더럭 났으니까.

그러나 병원을 찾으면서 인터넷을 뒤져본 결과 미혼 여성에게 필요한 정보를 제대로 찾을 수 있도록 홈페이지를 꾸며놓은 산부인과는 하나도 없었다. 산과 + 부인과면서 산과에 관련된 정보는 잔뜩 있는데, 임신과 출산에 관련된 건 잔뜩 있는데, 부인과에 관련된 정보는...거의 없다. 임신과 상관없이 여성의 몸에 일어날 수 있는 이상 징후가 무엇인지, 혹시나 성병에 걸렸다면 어떤 증상이 나타나는지, 적어도 미혼 여성이 성경험이 있던 없던 되도록 챙겨서 받아야 하는 검사의 종류가 무엇이 있는지에 대해 알려주는 곳이 없다. 병원의 전문적 정보보다는 여성 커뮤니티 게시판에서 물어물어 정보를 접해야 한다. 나는 병원이 공개적으로 믿을만한 정보를 미혼 여성을 위해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덜 무서워하면서 병원에 갈 수 있을테니까.

그리고 미혼 여성이 산부인과에 잘 가지않는 결정적 이유는, 내 몸 위해서 내가 가는건데 미혼 여성이 진찰받을 때 시선이 그다지 곱지 않으니까.

어찌됐든 여성의사가 있는 병원을 찾아서 갔긴 갔다. 갔더니 진료 가능한 여의사가 없었지만. -_- 산부인과에 가니 접수처에서 제일 먼저 물어보는 말이 있었다. "성경험은 있으세요?" ...당당히 "네"라고 대답은 했지만, 이게 무슨 결과를 불러올 지는 몰랐다.

성경험이 있다고 하면, 초음파를 할 때 환자의 의사와 상관없이 무조건 질 속으로 삽입해서 본다.

성경험이 있다고 해서 여성기 내에 무언가를 삽입하는 데에 거부감이 없는 게 아니다. 체외 기구로 할 것인지, 체내 기구로 할 것인지 정도는 적어도 환자의 의향을 물어보고 결정할 수 있게 해야되는 거 아닌가? 왜 성경험이 있으면 당연히 집어넣어서 해야하는 거지? 성기 삽입 섹스를 해봤다고 해서 내 몸 속에 무언가가 들어오는 일이 늘 익숙한 건 아니다. 특히 몸이 아파서 가뜩이나 불안한 상태로, 병원에서, 불편한 자세로, 의사와 간호사 앞에서, 기구가 잘 들어갈 만큼 질구가 이완이 되는 게 쉬운 일인가? 아니다. 아니다. 아무리 섹스를 많이 해봤다고 해서 익숙해질 일이 아니다.

적어도 예민한, 그리고 부끄러움을 느낄 수 밖에 없는 부위를 진찰하는 거면 환자의 마음을 더욱 편하게 해주어야 하고, 환자를 배려해야 한다.

첫 진료는 연세가 좀 있으신 남자 의사분이어서 오히려 편하게 진찰을 받은 편이었다. 그러나 두번째 진료에서는 그 분이 안 계셔서 상당히 젊은 남자 의사분께 진찰을 받았는데, 더 긴장되고, 아팠다. 처음 의사분은 내가 아프다고 하니 진료 의자를 세워서 편하게 진료를 받을 수 있게 해주셨는데, 두번째 의사는 내가 아프다고 했을 때, 내 허락 없이 내 아랫배에 손을 대서 진찰을 했다. 물론 경험이 부족해서였겠지. 그렇지만 환자가 아프다고 하면 최대한 환자가 불편하지 않을 상황으로 해야되는 거 아닐까. 가뜩이나 긴장해있고, 질 속에 초음파 기구 삽입해놔서 불편해 죽겠는데, 다짜고짜 아랫배 누르면서 가만히 계세요라고 해야 하는걸까.

올해 중순 쯤에 질 입구 쪽에 상처가 나서 산부인과를 찾았다. 전에 불쾌했던 기억때문에, 그리고 긴장했던 기억때문에 일부러 여의사가 있는 곳을 찾아갔다. 그런데 불친절하긴 마찬가지다.

염증 여부를 진단받으려면 어찌됐든 질 내부를 진찰받아야 한다. 그런데 진찰기구가 너무나 차가웠다. -_-; 가뜩이나 아파서 긴장해있었고, 의사한테 야단이라도 맞을까봐 위축되어 있었는데 진찰기구가 너무 차가워서 질 입구가 도저히 이완이 안되는 거였다. 아무리 힘을 빼려고 해도 안되는데 의사가 힘빼라고 야단을 계속 치고, 진찰기구는 차갑고...그 와중에 의사는 억지로 진찰기구를 질로 집어넣었다. 정말...말도 못하게 아팠다. 섹스 할 때에도 언제나 몸을 충분히 이완시키고 해서 아픈 적이 없었는데...질입구에 상처가 나있어서 아픈 상황에 억지로 진찰기구를 쑤셔넣었으니...정말 눈물이 다 나더라. 거기다 소독까지 해서 질 내부가 완전히 욱신욱신...

그렇게 배려없이 진찰을 하는데 쉽게 산부인과에 갈 수가 있을까. 어느 병원이던 간에 의사는 카운셀링을 겸하게 된다. 환자들은 우선 몸이 아프면 무섭기 마련이니까, 의사의 진료를 통해 몸 뿐만 아니라 마음도 편해지길 바라고 간다. 그런 환자들에게 오히려 몸을, 마음을 불편하게 만드는데 어떻게 산부인과에 거리낌없이 갈 수 있을까. 정말 다시는 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데.

의사 본인이 혼전 성관계에 부정적인 입장이라도, 자신의 견해때문에 환자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어서는 안된다. 어떤 경우에도 우선시 되어야 할 것은 환자의 몸과 마음이다. 환자가 있고 의사가 있는 거지, 의사가 있어서 환자가 있는 것이 아니다.

사실 산부인과에 가야겠다고 처음 결심했던 때는, '여우야 뭐하니'라는 드라마를 보고 나서였다. 산부인과 진료는 미리미리 받아둬야 한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탤런트 임예진이 맡았던 의사 역할때문이었다. 산부인과라도 편하게 갈 수 있다는 인식을 충분히 심어줬으니까.

그러나 드라마는 드라마고, 현실은 어디까지나 현실인가 보다. 그렇게 환자를 잘 배려해주는 의사는 흔하지 않으니까. 산부인과를 제외하고도 말이지.

그래. 의사분들이 이 글 읽으면 되게 억울할지도 모른다. 격무에 지친 몸으로 환자를 끊임없이 봐야되니까 짜증도 나겠지. 그런데 그게 다 의사 인력이 부족해서 힘든거다. 가뜩이나 힘든쪽 전공에 사람까지 적으니까 더 힘든거다. 게다가 건강보험 적용되는 부분은 의료수가도 워낙에 짜니까 일할 맛도 안나겠지. 근본적으로 의료 제도가 잘못되었다는 건 나도 안다. 의사도 사람인데, 힘들어 죽겠는데 어떻게 항상 방실방실 웃으며 환자를 맞겠나.

그래도 하나만은 원칙으로 해줬으면 좋겠다. 환자의 몸은 기계적으로 봐야할 무생물이 아니다. 환자는 병원에 가려고 마음먹은 순간 몸과 마음이 이미 위축되어 있다. 의사가 환자를 보는 것은 결국 1대1 비즈니스다. 사람대 사람이 만나는 거다. 그러니까, 환자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것을 우선으로 해줬으면 좋겠다.

환자가 잘못했기 때문에 몸이 안 좋아져서 온거라도 무조건 짜증부터 내고 화만 내지 않았으면 좋겠다. 일단은 마음 풀어주며 치료하고, 이러이러한 걸 잘못한거니까 다음부터는 그러지말고 조심하시라고 해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미혼 여성의 성경험을 더이상 터부시 여길 게 아니라, 안전한 성관계를 위해 필요한 정보들을 병원이 제대로 공개해줬으면 좋겠다. 알음알음으로 정보를 얻지 않고, 믿을만한 정보를 얻을 수 있게.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위해 필요한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