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1. 13. 14:18

[] 우습다

# 다 쓰고 보니 진중권 교수님이 프레시안에 칼럼 기고 하셨더라.
칼럼 전문은 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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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네르바를 잡았답시고 동네방네 소문 내는 것도 우습고, 그 사람이 30대 전문대 출신 무직이라는 프로필을 자꾸 흩뿌리는 것도 우습고.

여기서 민주주의의 훼손, 정권의 프로파간다, 사회 내의 계급 문제, 언론 통제, 국가 권력의 남용 등 현재의 문제가 집약되서 드러난다.

일단, 이 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건 그 사람의 정체가 정말로 미네르바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무엇을 말했던 간에 그 '말했다는 사실'로 잡아들였다는 거다. 그래, 이게 가장 문제다.

허위 사실 유포, 명예 훼손은 친고죄다. 그 사실로 피해 본 사람이 신고를 해야 잡아넣을 수 있는 거다. 그런데 지금 미네르바라는 사람을 잡아넣은 걸 보면, 그냥 잡아넣었지. 

이게 정부에서 말하는 '사이버 모욕죄'다. 자기들 눈에 거슬리면 잡아가겠다는 거, 그리고 그렇게 할 수 있다는 본보기를 지금 보여주고 있는거다. 너네가 그렇게 인터넷에서 떠들어봤자 우리가 진짜로 잡아 가두면 손가락만 살아 골방에서 키보드만 열심히 두드리고 있지, 실제로 뭘 어떻게 하겠어, 앙? 이라는 자신감의 발로다. 네티즌 모두를 싸잡아 실행력도 없는 찌질이들로 만들어버리는 거지.

이번 사건에서 '30대 전문대 출신 무직'이라는 키워드가 갖는 의미를 생각해보자.

일단 우리 사회에서 나이는 그 사람에게 권위를 부여한다. 기존에 알려졌던 미네르바의 나이는 50대. 30대가 이제 갓 사회에 나와 어느 정도 적응기에 접어들었다고 보이는 반면에, 50대는 이미 자기 분야에서 이룰만한 것은 왠만큼 이룬 시기라고 사람들이 인식하기 마련이다. 꼭 나이 대접 해야된다기 보다, 어찌됐든 풍부한 경험과 연륜은 무시할 게 아닌 건 사실이다. 그런데 30대라고 함으로써 지금까지 사람들이 봐왔던 그의 글들에 대해 경험적 권위를 소거시켜버린 거다. 어, 뭔가 잘 알고 쓴거 같았는데 알고보니 쥐뿔도 없는 놈이었네? 이런 생각을 갖게 하는 거지.

전문대 출신. 이게 정말 사실이 아니라면, 굉장히 악의적인 의도로 프로필이 왜곡된거다. 우리 나라 같은 학벌 중심 구조에서 사고력, 심층 분석력, 관찰력 등이 뛰어난 사람들은 대부분 명문대 출신일 확률이 크긴 하다. 워낙에 일찍부터, 어린 나이부터 성적으로 '층'이 갈려 버리니까 말이지. 그러니까, 전문대 출신이라는 말로 이 사람은 원래 그런 걸 분석할 능력조차 없다, 라고 말해버리는 거다. 만약 고졸이라고 했으면, 사람들이 아예 안 믿을거 같기도 하고, 혹은 한국에서 대학 진학률이 90%에 가까우니 전문대라고 했을 수도 있다.

게다가 왠만큼 이름있는 대학 출신이라는 사실 역시 그 사람의 발언에 권위와 무게를 실어 준다. 이 프로필이 노리는 것은 '한낱 전문대 출신 주제에 니가 그렇게 어려운 글을 쓸 리가 있냐? 여태 쓴 건 다 못 믿을 거짓말들이야.'라고 또 다시 권위와 신빙성을 제거해버리는 거다.

그리고 무직.
...
지금 우리 나라에서 '무직'이라는 말이 갖는 패배감이 얼마나 큰 지, 이들은 알고 있다. 역시 그럼 그렇지, 별거 아니었어, 그거 다 헛거야 라는 식으로 사고를 전환하게 하는 거다. 역시나 그의 말들에서 권위를 없애버리는 거지. 그냥 세상 살기 힘든 패배자가 찌질찌질 거린 거라고.

30대 전문대 출신 무직 이라는 프로필로 그가 가질 수 있는 모든 권위를 완벽하게 없애버린 거다. 이 프로필이 따르면 미네르바는 우리 사회에서 가장 하층 계급 중 하나에 해당한다는 사실이다. 사회적 계급의 고저에 따라 사람들이 갖게 되는 태도의 차이를 생각해보면 알 수 있겠지. 기존에 떠돌던 50대 명문대 출신 증권맨이라는 미네르바의 프로필과 비교해보자. 그 프로필이 갖고 있던 계급적 권력과 그에 따라 그의 말에 실리게 되는 권위를.

결국 미네르바를 잡아 가둔 사람들은 '쥐뿔도 가진 게 없는 사회 부적응자의 넋두리에 너희가 놀아난 거야!'라고 말하고 싶었던 거다.

하아. 지금까지 얘기는 잡힌 사람이 미네르바가 아닐 경우를 가정하고 한 건데, 그 사람이 진짜 미네르바라면 난 그 사람을 존경한다. 물론 소 뒷걸음질치다 쥐 잡은 것일 수도 있긴 하지만, 그런 거 제쳐두고 경제 쪽으로 고등 교육을 받지 않았던 사람이, 단지 독학만으로 그 정도 통찰력을 보였다는 건데. 대단한 거 아닌가.

지금 상황이라면 당연히 네티즌들이 들고 일어나야 하는 상황이긴 한건데. 어떻게 돌아가는 지 모르겠다. 공개로 쓰는 글 하나하나가 잡혀들어갈 빌미로 사용될 위험이 있는 상황이니까. '인터넷'이라는 공간을 '통제'하겠다는 의미니까.

차츰 수위를 높여가며 일을 벌이며 사람들이 느끼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 개구리를 찬 물에 넣고 서서히 가열하면, 뜨거움을 못 느끼다가 결국은 익어서 죽는다는 실험 결과가 고등학교 과학책엔가 아마 나와 있다. 지금이 그런 상황이다. 사람들이 못 느낄 만큼 서서히, 서서히 옥죄다가 어느 순간 마지막 매듭을 당기면 숨이 멎어 죽도록 하는.

...지금 난 무엇을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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