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6. 1. 05:57

[] 5월 31일 - 6월 1일 서울 집회 참여 후기

저는 경복궁 쪽에서 있었던 시위는 끝까지 있었습니다. 9시 반쯤까지 있다가 10시 15분 버스로 학교 돌아왔습니다.

시위대가 아마 3 무리로 쪼개진 것 같은데요, 일단 청와대를 포위한 한 무리가 있었구요, 경복궁 양 쪽 - 효자동, 삼청동으로 진입한 무리가 각각 있었습니다. 저는 삼청동 쪽에 사람이 적어서 지원이 필요하다 그래서 그쪽으로 갔는데요 (학교에서 함께 차타고 가신 KAIST 분들은 모두 이쪽으로 가셨습니다.), 효자동 쪽은 11시 반부터 살수차 동원했고, 폭력을 동원한 진압이 있었습니다.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진중권 교수를 비롯하여 20여명이 연행되었죠.

삼청동 쪽은 대략 12시 반부터 살수차에서 물대포를 쏴댔습니다. 처음에는 완만한 포물선을 그리도록 쐈습니다. 두 번째까지는 한 대씩 교대하면서 쐈지요. 세 번째부터는 두 대가 양쪽에서 물줄기를 교차시키며 쐈습니다. 물줄기 막던 피켓이 부서져서 직접 얼굴이랑 복부에 맞았는데요, 허허. 정말 그 다음부터 살수차를 보면 덜덜 떨리기만 했습니다. 사실 물에 맞는 거는 그때 아프고 그만이지만, 속옷까지 모두 흠뻑 젖은 상태에서 추위랑 싸우는 일이 보통이 아니었습니다. 그 신새벽에 쫄딱 젖어서 발 동동 구르며, 옆사람과 팔짱껴가며 어떻게든 몸을 데워보려고 애를 썼습니다.

혹여나 시위대가 그런 진압을 할 빌미를 줬냐, 라고 하신다면, 아니다, 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오직 저희가 한 일은 노래를 부르고, 구호를 외친 것 뿐이었습니다.

정말 가관이었던 것은, 경찰 버스 위에 올라간 사람에게 직사로 물대포를 쏜 일이었습니다. 그 분 머리에 직격으로 쐈죠. 그 상태에서 그런 식으로 쏜다는 건, 넌 떨어져 죽어라, 라는 뜻이라고 봅니다. 순간 혼절하셔서, 같이 올라가셨던 다른 분이 잡지 않으셨다면 정말 큰 부상 입으셨을겁니다. 그리고 경찰과 대치하던 시위대 바로 뒷부분에도 직사로 물대포를 퍼부었습니다. 사실 저희 마음 속에는 일말의 희망이 있었습니다. 적어도 저 거리에서 쏘면 사람들 많이 다치니까, 그렇게는 안 쏘겠지라고요...하하, 그렇게 생각한 저희가 너무 순진했던건가요?

국민의 세금으로 마련한 장비를 국민들에게 무기로 들이댄다는 발상 자체가, 저는 무척이나 치가 떨렸습니다. 게다가 충분히 살상 능력이 있는 장비를요.

처음에는 방송 기자들이 버스 위에 올라가서 찍으니까 물대포를 멈추더니, 나중에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뿌려댔습니다. 정말, 지금도 물줄기에 맞은 온몸이 욱신거려서 잠이 오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시위가 보통 3시 쯤 마무리 되고, 그 뒤는 사람들의 신명풀이로 이어졌기 때문에, 사실 어제 시위도 그런 양상이려니 하고 갔습니다...오판이었습니다. 어제는 정말 처음부터 끝까지 전쟁이었습니다.

효자동 쪽은 계속 폭력진압 중이었고, 그나마 삼청동 쪽은 나았지만, 새벽 5시 경 효자동 쪽으로부터 살수차에 밀려 시위대가 저희 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살수차와 함께 기동 진압대가 있었죠. 사람들의 대열이 완전히 밀려 우리쪽과 합류하던 6시 경, 저희가 들어가 있던 골목도 어느새 전경으로 막혀있었습니다.

뒷쪽 시위대는 앞쪽과 떨어져 있었죠. 허리가 끊길것 같다는 예감이 드는 순간, 전경이 방패를 휘두르며 돌진해왔습니다. 거짓말 하나도 보태지 않고, '죽는다'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갔습니다. 다들 혼비백산해서 안전바가 쳐져 있던 인도로 가까스로 서로 도와가며 넘어갔죠. 그 와중에 부상자도 꽤 나왔습니다. 인도로 걸어가며 계속 '폭력 경찰 물러 가라'라는 구호를 외쳤습니다. 전경들은 방패로 땅을 찍어가며 험악한 인상을 짓더군요.

그러던 와중에 제 눈으로 직접 '백골단'이라 부르는 전경을 봤습니다. 왼팔에 조그마한 육각 방패를 장착하고 곤봉을 들고 있더군요...소문이기만을 바랐는데...실제로 보고 나니, 분노와 공포와 슬픔이 교차했습니다. 안국역 가기 전 사거리 바로 앞까지 밀렸습니다. 구름 한 점 없이 파란 하늘 아래 맞은 유월의 첫날은 물벼락과 비명과 전경의 위협으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오전 일곱시 경, 대전으로 다시 내려올 일행을 구분하고, 저는 다른 일행 두 분과 좀더 추이를 보기로 했습니다. 그 전날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한 상태라서 편의점에서 라면을 먹고 잠시 편의점 앞에서 지친 다리를 쉬고 있었는데, 그때 이미 시위대가 많이 밀려서 종로쪽으로 가는 길로 빠져있었습니다. 그런데 종로 쪽 길에서 전경들이 치고 올라왔습니다. 수가 점점 불어난다 싶던 순간, 방패로 찍고 곤봉을 휘두르며 폭력 진압이 시작되었습니다. 순식간에 대열이 무너지며, 사람들이 도망치기 시작했습니다. 그 뒤로 전경이 계속 방패를 들이대고, 곤봉을 휘두르며 쫓아오더군요. 같이 있던 언니들이랑 너무 놀라고 무서워서 냅다 안국역 쪽으로 뛰었습니다. 금방이라도 뒤에서 머리채를 잡아채고 두들겨 맞을 것 같은 공포에, 또 다시 '죽는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경이 진압을 시작하면서, 앞에 계시던 시민 분들이 많이 다치셨습니다. 넘어지면서 다친 것은 예사고, 신발마저 다들 잃어버리신 채 맨발로 도망을 치셨습니다. 가까스로 안국역 3번 출구로 도망을 쳤습니다. (일부는 인사동 거리로 빠졌습니다.) 거기서 전경들이 대오를 정렬하고 있었는데요, 종로경찰서 쪽 인도에 정렬해있던 전경들이 거기 서있던 사람들에게 계속 중지를 세워 들이대며 도발을 하더군요. 그래서 야유를 보냈는데 애들이 실실 웃다가 갑자기 지휘자의 "잡아!"란 외침과 함께 길을 건너 돌진하여 인도에 계시던 남성분을 넷이서 꼼짝못하게 잡고 때려가면서 들다시피 연행을 해갔습니다. 현실이라 믿고 싶지 않은 상황에 주위 분들께서 계속 민변이나 진보신당 변호인단에게 연락을 취했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에 종각에서 무차별 연행이 시작되었습니다. 인도/차도를 가리지 않고 시위대로 보이는 사람은 무조건 연행하며, 여성들은 사복 여성 경찰들이 연행해간다고 변호인단 측에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것이 21세기 대한민국 서울에서 화창한 일요일 오전에 벌어진 일입니다.

새벽 내내 추위와 분노와 공포와 피로에 시달리던 사람들을 혈기왕성한 전경 9천여명이 (이 인원은 공식보도입니다.) 위협적인 무기를 휘두르며 토끼몰이를 해댔습니다.

진압이 시작되는 순간의 장면은 정말이지 제 눈을 의심하고 싶었습니다. 80년대 광주의 그날을 연상케 하는 그 모습. 그것이 21세기에 제 눈 앞에 펼쳐졌습니다.

요사이 벌어지는 시위들은 비단 쇠고기 수입 문제에만 국한되어있는게 아닙니다. 지금까지 사람들이 불만을 가졌지만 차마 표출하지 못했던 여러 가지 문제들이 함께 얽혀있습니다. 의료보험 민영화, 자사고, 수도/전기 민영화, 비정규직 문제, 대운하, 영어 몰입 교육. 이 모든 것에 위협을 받는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그 분노로 모인 것입니다. 쇠고기 수입 문제는 기폭제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 문제가 주목을 받는 이유는 내 의사와 상관없이 인간답지 못한 삶을 살게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고, 국민의 건강은 아랑곳하지 않고 미국에게 주도권을 넘겨줘버린 정부에 대한 불신과 분노가 크기 때문입니다. 또한 쇠고기 고시에서 볼 수 있듯이, 앞으로 그 모든 정책들이 같은 식으로 처리될 것이란 우려 때문입니다.

사실, 저는 그 자리에 학교 깃발이 있었으면 했습니다. 휘날리는 충남대와 서울대의 깃발이 너무나 부러웠습니다. 말씀드리지만, 저는 운동권 출신도 아니고, 학생회 간부 출신도 아닙니다. 다만 민주시민으로서의 의식을 꾸준히 유지하고 싶은 KAIST 학생일 뿐입니다. 하지만, 최근에 돌아가는 일이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KAIST 학생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이고 싶었습니다. 학교에 들어앉아서 공부만 하는 샌님들이 아니라, 사회적인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의사를 표명하는 시민들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럼으로써 역시 KAIST 학생들이다라는 평가를 받고 싶었습니다. 자기 이익만 추구하는 것이 아닌, 사회와 연대하는 사회 속의 KAIST임을 보이고 싶었습니다.

그 곳에 학교 깃발이 있으면 정말 학교 이미지에 불이익을 준다고 생각하시나요? 그럼 그렇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생각하시는 학교 이미지는 무엇입니까? 첨단 지식의 산실이 되고, 새로운 사고를 유지해야 할 KAIST에서 개혁보다 보수적인 분들이 많아 보이는 것이 저는 사실 안타깝습니다. 하버드는 끊임없이 새로운 사상에 대한 논의와 토론이 이루어지고, 그에 따라 학교 분위기 자체가 개혁 성향을 보인다고 합니다. 그렇지만...제가 몸담고 있는 이 곳에서는 학교에 오래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학풍은 보이지 않는군요.

이명박 정권이 천명한 정책때문에 이익을 보는 집단에 대부분 학생분들이 속해 있기 때문인가요? 아니면 그저 쿨해보이고 싶은 건가요.

그 정책들로 고통받을 대다수의 사람들을 생각해주셨으면 합니다. 저 정책들이 시행되면 과연 어떤 파급 효과가 올지 깊이 생각해보셨으면 합니다. 공부로, 자기 활동으로 바쁘겠지만, 민주주의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한 번 생각해보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최근에 시민들의 움직임에 이명박 정부가 대응하는 모습에 대해 생각해보셨으면 합니다. 과연 민주주의 공화국에서 공권력을 이용해 시민들에게 무력을 행사하는 행위가 정당한가 생각해보셨으면 합니다. (저는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어떤 형태의 폭력도 자행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국가와 수장으로서의 대통령의 의무가 무엇인지 생각해보셨으면 합니다. 자기 주위의 친인척들의 사유재산을 불려주는 것이, 외국에 나가서 굽신거리며 비굴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그가 할 일인지, 아니면 국민을 보호해야 하는것이 그의 일인지 말입니다. 그 국민들과 과연 진정으로 소통하려는 노력을 하는지, 자신이 말한 내용을 책임질만한 행동과 정책 입안을 하는지, 한 번 찾아보시고 생각해보십시오.

긴 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 2008. 06.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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