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4. 11. 23:26

[] 마음정리

요 며칠 마음이 동떠있었다. 내가 해야할 것들을 바라보다 지쳐서, 손을 놓으려는 방편으로 유학을 생각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해야할 일들로부터 도망치면서도 가장 체면상하지 않는 핑계. 그게 바로 유학이였다. 정말 뭔가를 하겠다는 유학이 아니라. 이래서는 가서도 연구에 푹 빠질 수가 없지.

동근 선배 블로그에서 보고 빌려온 '엄마 학교'. 오늘 이 책을 읽으면서 나를 가다듬을 수 있었다. 내가 자라온 환경도 이 책에서 말한 환경과 큰 차이가 없다. 책과 놀이에 둘러쌓여서, 내 책임에 따라 마음껏 자유롭게. 나는 어렸을 적 그렇게 키워졌다. 문득 깨달았다. 내가 힘든 건 모두 내 마음에 달려있었다는 사실을.

이것저것 재고 따지며 한 발 물러서 있기 보다는,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모든 걸 즐기면서 살았던 그 마음을 되찾아야겠다. 내게 시험은 지금까지 배웠던 것을 점검하는 하나의 놀이였으며, 그저 공부 자체가 즐거웠을 뿐이었다. 시험을 보기 위해 매달린 적은 대학에 들어온 이후였다. 스스로 하는 재미를 잃어버렸던 바로 그 시기부터.

다시 시작하자. 지금 겪는 모든 게 내게 필요한 일이라 생각하고 놀이로 받아들이자. 그래, 세상은 퍼즐이다. 풀어나가는 것 자체로 재미있는 놀이인 퍼즐이다. 간혹 골머리를 썩이기도 하고, 엎어버리고 다시 시작하기도 하지만, 마지막 한 조각을 맞춰 완성하는 그 순간의 희열을 얻기 위한 퍼즐이다. 조바심내지 말고, 묵묵히 차근차근 하자. 힘들어도 한 걸음 한 걸음 걷다보면 어느새 힘든 건 사라지고, 걷는 데에 즐거움이 가득해서, 봉우리까지 즐겁게 올라갈 수 있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잖아.

책을 읽으니, 마음이 평온해졌다. 지금껏 내가 받았던 사랑을 되새길 수 있었고, 나도 앞으로 그렇게 살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책을 읽던 중간중간 왈칵 솟던 눈물. 책의 저자가 했던 교육과 엄마가 내게 했던 교육이 그대로 겹쳐질 때가 바로 내가 받은 크나큰 사랑을 확인하는 순간이었고, 절로 눈물이 날 수 밖에 없었다.

어제 저녁까지만 해도 우울증이 심해져서 또다시 어리석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정신줄 놓고 생명줄 놓을 생각하고 있었지. 그런 순간에 이 책을 읽게 되서 너무나 다행이다. 그리고 책을 읽으면서 다시금 깨달은 내 주위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을 잊어선 안되겠다.

시기 적절하게 책 리뷰를 올려주신 동근 선배, 어젯밤 벚꽃 아래서 와인을 마시며 간만에 즐거운 시간을 갖게 해준 쭘형과 쏠, 나에 대해 객관적인 평을 해주고 용기를 불어넣어준 규태 오빠, 프로젝트를 진행할 자신감을 갖게 해준 용래 오빠, 나를 믿고 격려해주고 신경을 써주시는 많은 사람들, 그리고 언제나 나를 사랑해주는 가족들과 상훈 오빠. 모두가 너무나 사랑스럽고 고마운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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