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12. 5. 21:24

[] 우리에게 온라인 공간은 무엇인가.


발제문으로 썼다가, 논점이 너무 안 잡혀서 토론에 이용하기 어렵겠다는 생각에 쓰기만 했다. -_-;
너무 할 말이 많았는데, 그게 모조리 글에 들어가버려서 쟁점을 확보하기 보다는 그냥 고개만 근갑다 끄덕이게 되는 글이 된 것 같다.

여하간, 최근의 사태에 대한 내 입장을 압축한 글이다.

=================================================================================================

 우리에게 온라인 공간은 무엇인가.

  내게 있어 온라인 공간의 의미는 무척 다양하다. 일상을 벗어나 잠시나마 새로운 즐거움을 만끽하게 해주는 놀이공간이기도 하고, 비록 얼굴을 직접 맞대는 건 아니지만 사람들을 만나 수다를 떨 수 있는 찻집과도 같은 공간이기도 하다. 나와 공감하는 사람들과 의견을 주고 받는 토론장이 되기도 하고, 정보와 지식을 공유하는 도서관이 되기도 한다. 물론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온라인 공간의 의미는 무척 다양하게 다가올 것이다.

  그러나 그런 온라인 공간을 사용함에 있어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각 공간마다 목적이 있고, 알맞게 요구되는 행동의 선과 규칙이 있다는 사실이다. 또한, 그 공간을 사용하고 있는 내가 여성이고, 성소수자임을 떠나고, 모두가 자신이 띄고 있는 특정한 입장을 떠나서도 지켜야 할 최소한의 상식은 있다. 놀이 공간에서 남이 노는 것을 훼방 놓아 놀이판을 깨버린다거나, 찻집이라면 서로 대화를 잇지 못하도록 너무 시끄럽게 하는 경우, 토론장인데도 토론이 아닌 비아냥과 조롱만을 일삼거나, 혹은 도서관에 정보와 지식 공유를 위한 책이 아닌 찌라시나 정보로서 하등 가치도 없는 종이 쪼가리만을 자꾸채워 넣는 행동 등을 하지 않는다는 게 그 상식이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그 공간을 함께 이용하는 사람들과 목적성을 공유하기 위해서 하지 않아야 할 최소한의 행동들과 지켜야 할 최소한의 규칙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가령 예를 들어, 여기 화장실이 있다고 하자. 모두가 화장실은 대소변을 보는 공간이라고 합의했다. 그렇다고 해서, 화장실 공간 내에 아무데나 마구 일을 보아도 된다고 우리가 합의한 것은 아니다. 최소한 바닥이 아닌 변기에 일을 봐야 하고, 휴지는 휴지통이나 변기 속에, 수세식 화장실일 경우 물을 내려야 한다는 약속이 존재하고 있다. 그것만 지킨다면 좌변기 위에 올라가서 쪼그려 일을 보든, 물구나무를 서서 일을 보든 아무도 상관하지 않는다. 그 장소의 목적에 맞게 사용을 한다면 말이다.

  그리고 혹시나 화장실이 더럽혀졌을 경우, 그냥 그대로 내버려두는 것이 아니라 청소를 하고 관리를 하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행여나 취객이 먹은 것을 확인하거나, 일을 보던 사람들이 실수로 처리를 잘못했을 경우에 다시 다른 사람들이 마음 놓고 사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런 관리하는 사람이 존재하지 않거나 있음에도 화장실을 제대로 정리하지 않고, 화장실을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모든 걸 떠맡긴다면 어떻게 될까. 간혹 책임감이 무척 강한 사람이 처음 한 두 번은 치울 수도 있을거다. 그러나 대부분은 한 번 들여다 보고, 코를 찌르는 냄새와 눈 앞에 펼쳐진 더러운 모습에 인상을 찌푸리며 되돌아 갈 것이다. 그리고 나서는 왠만한 각오가 있지 않은 한 다시 그 화장실을 쓰지 않을테고.

  위에서 든 비유가 어떻게 보면 지저분하다고 받아들여질 지도 모르겠지만, 공간에 대해 합의된 목적과 사용 방법을 설명하기엔 알맞다고 생각한다. 오프라인 공간도, 온라인 공간도 그 공간에 주어진 목적이 있고, 사용하기 위한 방법이있다. 그리고 그 공간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그 목적과 방법을 공유할 필요성도 있다.

  온라인 공간은 목적을 갖기도 하지만, 소통을 위한 공간이기도 하다. 온라인에서 글을 쓰고, 채팅을 하는 것뿐만 아니라, 굳이 온라인 공간에 글을 올리거나 하지 않고 비록 눈팅만 하는 사람이라도 다른 사람과의 소통을 위해 온라인을 사용하고 있다. 다른사람과 글과 대화를 주고 받으며, 아니면 다른 사람의 글을 읽으며, 내가아닌 다른 사람들은 이런 생각을 하고 있구나 라든가, 나랑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또 있구나 라는것을 아는 것 자체가 소통 아닌가. 얼굴을 맞대고 하는 대화처럼 실시간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약간의 시간차와 양방향성보다는 일방성이 많기도 하지만, 온라인의기본은 소통이다. 우리는 이걸 잊지 말아야 한다.

  넓은 길을 오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자. 사람이 많은 곳에서 길을 걷다 보면 간혹 부딪히기도 하고, 남의 발을 밟기도 하고, 사람을 피하다 조금 더 멀리 돌아가기도한다. 그렇지만 기본적으로 그런 곳을 걷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이 걷는 것을 서로가 함께 신경 써야만 한다. 혹여나 길을 가다 부딪히거나 남의 발을 밟았을 경우, 간혹 다투는 일도 있지만 먼저 부딪혔거나 발을 밟은 사람이 정중히 사과를 하고 길을 다시 걸어간다. 이럴때, 상대방이 사과를 하던 말던 욕을 퍼붓거나 그 사람에게 폭력을 행사한다면 이게 옳은 일인가? 아니면 일부러 다른 사람에게 툭툭 부딪히면서 시비를 걸거나 비아냥 거리면서 다닌다 해도 단지 길을 걷는 다양한 한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해야 하는 것일까? 과연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는가?

  길거리에는 몸이 건강하고 길을 잘 알아 빠른 걸음으로 거침없이 걷는 사람들만 있는 게 아니라 다양한 소수자들도 함께 있다.휠체어를 탄 장애인이나 시각 장애인, 몸을 제대로 못 가누어 다른 사람의 부축을 받아야하는 장애인도 있다. 아직 어려 혼자서는 길을 찾는 게 어려운 아이들도 있다. 이마에 써서 붙이고 다니는 것이 아니라 눈에 잘 띄지는 않지만 성소수자도 있다. 나이가 드셔서 빨리 걷지 못하는 어르신들도 있다. 처음 와서 길을 잘 몰라 두리번대는 사람도 있다. 드물지만 길거리에서 공연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사람들도 안전하고 편안하게 길을 사용할 권리가 있다.

  그런데 만약 어떤 사람이 병신아 비켜, 호모야 꺼져, 늙은이가어딜 나와, 아줌마는 집에 가서 밥이나 하지, 애새끼들이 어디서 설쳐라면서 그 사람들을 비하하고, 자유로이 길을 쓰지 못하게 하는 경우가 생긴다면 그를 그냥 두어야 하는가? 소수자들을 전혀 배려하지 않고, 그들이 길에 나오고자 하는 마음마저 사라지도록 만드는 사람을 말이다.

  길은 우리 모두가 편리하게 가고자 하는 곳으로 가기 위해 존재하는 곳이다. 길에서 지켜야 할 규칙이라고 하는 것은 길을 걸을 때 무조건 오른손을 번쩍 치켜 들고 그것을 지킬 것을 강요하거나, 지키지 않았을 경우 벌을 주고 길에서 쫓아내는 그런 것이 아니다. 이 길을 걷기 위해서는 특정 브랜드의 옷과 구두를 걸쳐야만 한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길을 걷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이 안전하고마음 편하게 걷기 위한 최소한의 약속이어야 한다.

  다양한 연구들에서 소수자란 자신이 차별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는 사람들이라고 정의한다. 그렇다. 온라인 공간을 이용하는 소수자라고 하는 사람들은 이미 자신이 차별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충분히 알고 있다는사실만으로도 일상에서 끊임없이 고통을 당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적어도 당게시판에서 만큼은 평소에 사회와 주위 사람들에게서 끊임없이 받고 있는 차별을 잠시나마 잊고 싶어 들르는것이다. 내가 여성이라서, 성소수자라서, 진보주의자라서 끊임없이 일상에서 느끼는 고통과 스트레스를 조금이라도 덜 느끼기 위해서, 나와 같은 어려움과 고통을 겪는 사람들이 서로 보듬어 줄 수 있는 기회를 갖고 싶어서 말이다.

  지금까지 내가 당게에서 줄기차게 싸워왔던 이유는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의 입을 다물게 하거나, 굴복시키거나, 쫓아내거나,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다. 다만, 어떤 글이 나에게 얼마나 상처가 되었는지, 그 글이 어떤 면에서 틀렸는지, 그 글은 어떤 생각의 맥락에서 나온건지를 알고, 또 알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찾는 당게에는 일상에서 보는 사람들보다 훨씬 다양한 소수자들이 존재한다. 일상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며 살아오는 반면에, 당게에서나마 자기 자신으로서 있기 위해 소수자로서의 정체성을 온전히 드러낸 채로 있고 싶어한다. 그들은, 그리고 우리는 끊임없이 고통을 당해 왔으며, 작은 돌에 맞는 것에도 쉽게 아파한다. 한번 데었던 상처는 뜨거움에 유달리 약한 것처럼 말이다. 작은 자극에도 남들보다 큰 아픔을 받는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 그까짓 아픔도 참지 못한다고 힐난하고 계속 아프게 해야 할까? 난 그들이, 혹은 우리가 조금이라도 아픔을 덜 느끼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아픔의 수위에 대해 누차 알려왔고, 소통하려고 노력해왔다.

  온라인에서는 오프라인과 달리 눈빛과 몸짓, 목소리의 높낮이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오로지 글로만 소통해야 한다. 평소 대화와 달리 왜곡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더욱 신경쓰고, 예의를 갖추어야 한다. 특별히 뛰어난 글솜씨와 논리를 가진 사람만이 글을 쓰라는 게 아닌,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과 소통하려는 자세로 온라인에 참여하자는 말로 이 글을 마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