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6. 29. 06:04

[] 6월 28일 촛불 집회 후기

사실 새벽 1시쯤 도착했는데 컴퓨터 켤만한 상황이 아니라 그냥 씻고 잤습니다. =ㅅ=;;

어제 학교 사람들 세 분과 11시 50분 ktx를 타고 서울로 올라갔습니다. 다음 쪽 사람들이 1시~2시에 모인다고 했기 때문이죠. 그래서 시청 광장으로 1시쯤 도착했는데, 왠걸요. 광장 한켠에 안티명박 깃발만 좀 있고 사람은 별로 없더라구요. 일행 한 분과 합류하여 근처 파이낸스 센터 지하에서 밥을 먹고 그럼 광화문 쪽으로 가보자 해서 걸었습니다. 뭔가 지나다니는 사람들 - 잠재적 시위 참여자? ㅋㅋ - 은 무척 많은데, 모여있는(!) 사람들이 없는 겁니다.

세종문화회관 뒷길로 걷고 걸어서 정부중앙청사 뒤를 지나는데, 외교통상부 앞에서 일련의 사람들이 소규모 시위를 하고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이번 졸속협상에 대한 질타겠죠. 그곳을 거쳐서 경복궁 왼쪽 옆 길을 올라가는데, 담장 바로 아래는 전경들이 쭉 앉아있어서 그 건너편 길로 걸어갔습니다. 한참 걸어서 정부청사 부속 유치원 있는데까지 올라갔는데, 처음에 사복입은 사람이 제지를 했습니다. 아마도 청와대 소속 경호원인 것 같은데 대뜸 시위하러 왔냐고 물어보더군요. 아놔, 거기에 네라고 대답할 사람이 어디있습니까. 그냥 구경하러 왔다, 걷다보니 여기까지 왔다 그랬더니 아고라 뭐 그런거랑 관련된 분들 아니시죠? 라는 겁니다. -_-;; 아니, 인터넷 하는 사람 중에 다음 아고라 한 번도 접속 안해본 사람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_-;;; 취임 했을 무렵 화면보안기에 걸린 암호 푸는 법을 몰라 일주일 간 컴터를 못켰던 이명박 주위엔 아무래도 컴맹들만 있나봅니다. -_-;;;;

여튼 나름대로 정중히 말을 걸어주길래 정중히 답해주고 지나갔는데 한 열발짝 갔나, 앞에 있던 다른 경호원에게 더이상 못가십니다. 바로 앞이 청와대입니다. 요즘 뒤숭숭하니 좋은 때 오십시오. 이런 말 듣고 그냥 내려갔습니다. 음. 항의하는 것도 왠지 웃기고, 못가게 하는데 우기면 잡혀갈 거 같아서 그냥 돌아왔죠. ㅎㅎ 저희 일행 바로 앞에서 되돌아간 여성 두 분께서 스쳐가며 '꼭 지나가세요!'라고 속삭여줬는데, 결국 못 지나갔습니다. ㅋㅋ

여튼 청와대 가는 루트가 꼭 그 직선 도로만 있는 건 아녀서 우회해서 가볼까하고 한블럭 옆길로 갔는데, 거기서도 청운동사무소 바로 앞에서 제지당하고 내려왔습니다. 청와대 주위를 빙둘러서 호위인지 포위인지 모를 것을 하고 있더군요. 청운동사무소 근처는 나름 최후 방어선이라 생각했는지 단셋 중에 1002 기동대가 포진하고 있었습니다. 다른 부대에 비해 길고 묵직하게 생긴 진압봉이 정말 위협적이었어요. 그래도 아직 밝은 낮이고 시위 상황이 아니라 그런지 괜히 붙잡고 그러진 않더군요. 거의 광화문 쪽으로 내려왔을 때, 일행들이 어떤 분홍색 옷으로 꾸민 아주머니께 붙잡혀 있는 걸 봤습니다. 뭐지? 하고 가보니, 혹시 시위하다 붙잡히거나 통행이 제지당했을 경우에, 누나 혹은 언니 집이라 하고 오라며 명함을 주시는 거였습니다. ㅠㅠ 문화 관련 일을 하시는 분인 거 같았는데, 마음씀이 참 고마웠습니다. 지나가시며 시위에 불만을 표하는 거주시민께 공기업 민영화며 다른 얘기들을 쉽게 조근조근 해주시며 설득하시더라구요. 대단하시다라며 마음 속으로 박수를 쳤습니다.

바로 옆에서는 전경들이 전경차 바퀴에 굵은 밧줄과 와이어로 차를 가로수와 뒷차에 연결하고 있었습니다. -_-; 일행들은 사진을 찍었는데, 전경들이 사진찍지 말라고, 찍은 거 보여달라고, 지우라고 해서 한 사람꺼 한 장만 지우고 나머지는 모두 그냥 지나왔습니다. ㅋㅋㅋ 별것도 아닌데, 찔리는 건 참 많은 모냥입니다. 그래도 애들이 대충 윗사람 눈치 보며 제지하는 척 하는 거 같아서 얘들도 참 피곤하겠구나 싶어서 수고하세요, 이러구 왔습니다. 경복궁 역 입구를 전경들이 막고 있길래, 어, 지하철 안다녀요? 그랬더니 이 역 그냥 통과합니다. 이러는 겁니다. 시민들 항의하고 난리났었습니다. =_=; 아, 정말 무식한 어청수와 오세훈. (지하철 통과는 서울시장 거치지 않으면 가능하지 않을텐데 말이죠.) 지하철이 안 멈춘다고 사람들이 안 모이나요?

큰길을 건너서 길가를 다 막은 전경차 사이로 길을 다니는데, 현대증권 앞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서 가봤습니다. 나중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으니 아주머니들께서 인도에 앉아있었는데, 전경들이 뺑 둘러싸더니 위협하며 몰았다고 합니다. 그 와중에서 전경의 허벅지가 아주머니 한 분 허벅지 안쪽에 닿았고, 몸싸움이 벌어지며 아주머니께서 꼬집으셨다고 하네요. -_-;; 여튼 40~50대 정도의 아주머니들은 전경이래봤자 다 아들뻘이라서 -_-;; 안무서워하시는 겁니다. -_-;;; 애들이 보통 방패 찍으며 대열정비! 이런거 외치며 위협해도 눈하나 깜짝 안하셨다는 -_-;; 우리는 어머니라서 괜찮아, 라는 자신감을 내비치시며 아들 나무라듯 전경들에게 아가, 그러지 마라 그러시는 겁니다; 좀 있으니 칼라티비도 출동하더군요. 시민 기자단과 칼라티비가 촬영을 하니 지휘관으로 보이는 경찰이 제도권 언론이 아니라서 찍지 말라는 겁니다. 칼라티비 스탭들이 일갈했습니다. "진보신당은 제도권 정당이다!" 뭐 그런 실갱이를 벌이다가 저희 일행은 세종로 쪽으로 왔습니다. 시계를 보니 오후 네시. 벌써 세시간여를 쉬지 않고 걸었더군요. -_-; 그래서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다섯시쯤까지 쉬면서 구경했습니다. 그런데 전경들이 계속 삼청동 쪽으로 병력 이동을 하는 겁니다. 알아보니, 전대협 오비들이 안국동에서 삼청동쪽으로 진입 시도를 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꽤 위급한 상황이었나 보더라구요. 그런데 좀 지나니 다시 전경들이 귀환하는 겁니다. 음, 전대협 분들이면 현재 체력이 딸릴 거라는 자체 분석을 하고 -_-;; 좀 더 쉬었다가 이순신 동상 있는 쪽으로 내려갔습니다.

저는 그때 눈 앞에 벌어진 광경을 보고 정말로 충격 먹었습니다. 세종로 사거리 광장을 중심으로 광화문 쪽, 시청 쪽, 을지로 쪽 세 방향 모두를 빙 둘러 전경차와 스크럼 짠 전경들이 막고 있었습니다...(시청 쪽으로는 아예 사람들을 가지도 못하게 해서 골목으로 돌아서 갔죠.) 아, 이게 MB식 소통의 본질이구나. 무조건 막아서 사람들이 못 모이게 하면 되는 거라 생각하는구나. 정말 슬프고 슬프다 못해서 헛웃음이 나왔습니다. 빙 돌아서 시청 쪽으로 간 뒤, 길거리를 막은 전경차 옆 인도를 따라 드디어 트인 도로로 나왔을 때 본 것은, 조선일보 사옥 앞부터 단단히 막고 있는 전경차, 그리고 어디론가 뛰어가는 전경이었습니다.

도로에는 시민들이 흰 국화꽃을 한 송이씩 한 송이씩 놓고 있었습니다. 그 뒤쪽에서는 길이 100m에 이르는 커다란 화폭에 화가들이 이명박 얼굴을 그리고, 시민들은 하고 싶은 속내를 천 위에 풀어내고 있었습니다. 전경들은 국화꽃은 제발 밟지 말라는 시민들의 애원에도 전투화로 짓밟고 어디론가 뛰어갔습니다. 한켠에서는 대통령 가지고 뭐하는 거냐는 분과 그 분과 실갱이 하는 분이 있었습니다. 아직도 대통령을 임금님으로 아는 사람인 것 같았습니다. 또 한켠에서는 시위대가 붙여놓은 유인물을 잡아뜯다가 시비가 붙은 분도 있었습니다. 이게 뭐하는 짓이냐며 서로 다툽니다.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다른 사람의 표현을 잡아뜯는 그 분이 과연 옳은 걸까요. 저쪽 한편 청계 광장 옆에서는 금속노조가 토론회를 엽니다. 청계 광장에서는 전공노가 투쟁을 합니다. 청계천 도로에서는 시민들이 달아놓은 색색의 풍선들 - 대운하 철회, 민영화 반대, 교육 자율화 반대 등 문구가 새겨진 - 이 하나씩 하늘로 날아 올라 불어오는 바람을 타고 청와대로 날아갑니다.

마치 20년이 넘는 세월이 한 장소에 뭉뚱그려진 듯한 모습...비현실 속에 떨어진 듯한 느낌, 그렇지만 이토록 자유롭고 다양한 모습이 사실 우리를 살게 하는 힘이구나라는 생각에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자신이 정당하다고 느낀다면, 자신이 할 수 있는 다양한 방식으로 이야기를 하는 것. 그것을 모두들 알고 있구나라는 사실에요.

오후 5시인데도 별 모임이 없어서 일단 저녁을 먹으러 갔습니다. 보쌈 정식 + 쌈밥 정식으로 다섯명이 푸짐하게 저녁을 챙겨 먹었지요. 밥 먹을 일이 없을 거 같아서 아까 편의점에서 비상식량을 사놓았건만...결국 하나도 못 먹고 물만 좀 마셨습니다.

촛불 문화제에 잠시 있다가 8시쯤 전대협 깃발 따라서 쫄래쫄래 따라갔습니다. 와. 구호를 외치는 포스가 장난이 아닌겁니다. 정말 내공이 실린 목소리들. -ㅁ- 인권위 건물 옆 도로를 따라 가는데, 빌딩 사이로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들에 소름도 살짝 돋았습니다. 예전에 이 분들은 얼마나 피맺히도록 울부짖으며 싸워왔을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아프기도 합니다. 그렇게 해서 명동을 돌아 다시 시청으로(!) 왔습니다. 아니 왜! 선발대로 안국동 쪽 뚫으러 간다고 생각해서 엄청 긴장해서 따라갔는데 -_-;;

여튼 그래서 시청에서 다른 사람들과 또 합류해서 플라자 호텔 옆 길로 지나서 을지로 쪽을 지나 세종로 사거리 쪽으로 갔습니다. 저~ 건너편이 서대문 가는 길이었죠. 광화문 기준으로 오른쪽 도로. 후. 시민들 모여서 노래 좀 부르고 구호 외치는데 바로 살수 하더군요. (아, 안내방송 세 번은 한다고 했습니다. 세 번째 경고 채 끝나기 전에 물대포 쏘기 시작했지만요.) 음 그 전에 버스 위에서 깃발 좀 흔들긴 했습니다. -_-a (이번엔 전경차 흔들기 전에 살수 시작했어요.) 여튼 저는 살수구가 보이자마자 뒤로 물러났습니다. 전에 맞았을 때 좀 아팠어야죠. -_-;; 처음 보는 사람들은 저게 살수차라고 말하니 놀랍니다. 그냥 카메라 차 아닌가요? 라고 ㅎㅎ

아, 근데 사람들 센스 정말 장난 아닙니다. 카메라에 레이저 포인터를 쏴서!!!! 카메라가 그냥 시위대 안 보고 뒤로 돌아가버립니다. ㅋㅋㅋㅋ 물대포에 저항하는 의미로 물풍선을 만들어 와서 버스 위에 올라가 전경들에게 던집니다. ㅋㅋㅋ 물총에 까나리액젓과 식초를 섞은 걸 넣어서 쏩니다! 소화전을 열어 되려 전경들에게 물을 뿌려줍니다! 계란을 던집니다.

공권력에 대한 저항과 조롱의 의미를 담아 최대한 저항을 합니다. 무력하게만 당하고 있지는 않겠다는 의사를 보입니다.

더 이상은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의사를 표현합니다. 저들은 듣지 않지만요.

하여간 저는 어제 우비도 입은데다가 물대포 대신 부슬부슬 내리는 비만 좀 맞고, 소화기는 퍼져나오는 것만 좀 매캐하게 맡고 11시 무궁화호 타고 내려왔습니다. 오자마자 잠들어서 어제 시위가 어떻게 끝났는지 알 수 없네요.

내려오는 기차 안에서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는 정말 '시민군'이라는 형태를 띄고 무장시위를 할 수 밖에 없나. 전경을 무력화 시키고 뚫고 가는 수밖에 없는가. 수도 훨씬 많은 시민들이 전경들에게 막히고, 자꾸만 지쳐가는 그 모습이 안타까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촛불 다음은.
그리고 이 촛불의 방향은.

머리가 아파옵니다.

- 2008. 06. 29

'끄적끄적 낙서장'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사회 변혁과 분자 운동  (0) 2008.07.14
[] 라흐쉬나의 비밀  (0) 2008.07.11
[] 모순  (0) 2008.06.22
[] 내가 촛불 집회에 참여하는 이유  (0) 2008.06.03
[] 아빠 전화를 받았습니다.  (0) 2008.06.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