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 5. 18. 07:50

[] [4]

연영...미안해...
알고 있으면서 막지 못해서...
사실 네가 들어왔을때부터 이미 눈치채고 있었어.
일부러 모르고 있는 척 했는데...
내가 조금만 더 빨리 반응했더라면 넌 죽지 않았을텐데..
널 보낸건....날 도발시키려는 거였을꺼야...
다들 알고 있잖아. 넌 날 이기지 못한다는 것...
처음부터 널 보낸건...우리 둘 다 처리하겠다는 거였겠지...
날 죽이고 네가 자결하던지.
아니면 내가 널 죽이고 미쳐버리던지.

후훗. 반은 맞아들었네....
연영 너는 알고 있지? 내가 지금 미치기 직전이라는 것.
내가 널 얼마나 따랐는데..
나도 널 얼마나 소중히 여기고 있었는데....
날 거들떠보지도 않는 내 혈육들보다 널 얼마나 아꼈는데..
내가...널....얼마나 사랑했는데.......
결국 이렇게 되리라는 것 생각하지 않으려고 얼마나 애를 썼는데.....

그래. 연영. 생각났어.
내가 소중히 여기는 것은 무엇이든간에 망가져버린다는 것 말야.
언제였지? 나 어렸을 때, 강아지 키운 적 있었잖아.
꽤 소중히 여겼었는데....
어느날 아침에 싸늘히 식어있었던거 기억나?
그때 아버님께서 그러셨었지.
시린 가문의 일원에게는 작은 것에 줄 정은 필요하지 않다고.
....내가 얼마나 외로웠는지 아시고서 한 말이었을까.
아마 그 이후였을거야.
네게 쌀쌀맞게 군게.
너도 소중히 대하면 그 강아지처럼 언젠가 죽어버릴꺼라는 생각에
필사적으로 노력했었어.
널 잃지 않으려고.
그런데 숨기려 해도 숨겨지지 않았나봐.
이렇게 네가 여기 누워 있는 거 보면.
난 이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응?
큰형님도. 둘째형님도. 셋째형님도.
모두 내 손으로 죽였어.
그들을 따르던 사람들까지 모조리.
아직도 손에서 피냄새가 나.
핏자국이 지워지지 않아.
어떻게 해야해?
말 좀 해봐 연영....
제발.....
난....너 없이 산다는 건 생각조차 못했단 말이야.....
그냥 널 따라가버릴까...
그다지...
살고 싶지 않은데....
나도 너와 형님들처럼...그렇게 가고 싶은데.....

.
.
.

[이봐! 뭐하는 거야!]

누군가가 득달같이 달려와 리후의 손을 낚아챘다.

[위험하게 무슨 짓이야! 자기 머리에 총을 들이대고. 그렇게도 살고
싶지 않아?]

끄덕끄덕. 힘없이 머리가 아래위로 끄덕였다.
짜악- 다른 한 손이 사정없이 리후의 뺨을 후려쳤다.
멍하던 눈에 분노가 서리며 그 손의 임자를 바라보았다.

[무슨 짓이냐. 감히 내게!]

[목숨을 살려준 은인에게 그게 무슨 말버릇이지? 죽으려는것 살려줬잖아.]

[살고 싶지 않다! 왜 내게 간섭하는 거지?]

[어리광 피우지 말아라.너마저 죽으면 네 손에 죽어나간 저 목숨은 누가 짊어지지? 모든 것이 네 책임이다. 피와 목숨, 그 모두를 네가 계승해 나가는거라구!]

[누구냐. 넌 누구야!]

[솔여 가문의 현유라고 한다. 시린 가문의 계승자인 리후여.]

[내 이름을 어떻게 아는거야!]

[이봐. 당신 바보야? 시린 가문의 사람이라면 당연히 유명하지. 게다가 지난 밤에 그런 혈겁을 벌이고도 이름이 알려지지 않는다면 도성 사람들이 모두 눈멀고 귀먹었게?]

[....젠장......]

[훗. 앞으로 자주 보게 될거야. 친하게 지내자고.]

현유는 앞으로 손을 내밀었다. 리후는 내민 손을 보지도 않고 쳐버렸다. 현유는 손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보기 싫어도 자주 보게 될거야. 너와 난. 곧 혼인할테니.]

리후가 놀란 눈으로 현유를 바라보았다.

[이제야 좀 쳐다보는군. 그렇게도 내가 매력이 없나? 보기가 싫어?]

[농담하지 마라. 방금 뭐라 그랬지?]

[아아 혼인 얘기? 역시 귀가 번쩍 뜨이나보네.]

[농담말랬지! 무슨 소리야!]

현유는 웃음을 그치고 정색을 하며 말했다.

[말 그대로다. 시린 가문의 리후. 솔여 가문의 현유는 당신에게 혼인을 권유하고 있다. 받아들일텐가?]

[갑작스러운 일방적인 청혼을 받아들일거라 생각하나. 그리고 나는 가문과 혼인한 몸이다. 두번 혼인할 수는 없어.]

[가문과 혼인했다라. 그렇지만 가주라면 후계자를 낳아야 하는 법. 싫어도 넌 혼인하게 될거야. 상대가 내가 아니더라도.]

[혼인따위 하지 않아.]

[그럼 거래를 하지. 서로 한가지씩 조건을 내거는 거야. 혼인이 아닌 거래라 생각해라.]

[그래? 조건이 뭐지?]

[나중에 내가 죽이고자 하는 사람을 죽여주면 된다. 딱 한사람만. 죽여다오. 어때 들어줄 수 있겠나?]

[...나는 암살자 가문의 계승자다. 못할것 같나.]

[그렇다면 그 사람이 설령 너라고 해도 들어줄테냐.]

[그게 조건이라면 얼마든지 들어주지. 살고 싶지 않은 이 세상을 떠날 수 있는 명분을 만들어줘서 고맙군.]

[...못말리겠군 그래. 그럼 그쪽 조건을 말해봐.]

[내가 연영을 잊을 수 있게 해다오.]

[뭐? 무슨 소리야 그게.]

[이 무덤의 주인이다. 내 삶에 있어 더 없이 소중한 사람이었다. 내가 그를 잊을 수 있게 해다오. 할 수 없다면 혼인은 없었던 일로 하겠다.]

[..노력해보지. 그렇다면 받아들이는건가?]

[받아들이겠다.]

[좋아. 돌아가는대로 어르신들께 말씀드려 매파를 보내지. 준비하고 있으라고.]

[앞으로의 생활. 기대하고 있지.]

[기대에 부응하도록 노력하지. 시린 가문의 리후, 내 신부가 될 사람이여. 다시 만날때까지 안녕히. 봉황의 수호가 그대에게 있기를.]

[솔여 가문의 현유여 다시 만날때까지 기린이 그대에게 힘을 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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