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 5. 18. 07:47

[] [1]

검은 하늘에 어울리지 않게 소란스러운 밤거리. 번쩍이는 네온사인과 시끄러운 차소리, 그리고 거리의 여인들이 술취한 사람들을 상대로 흥정을 벌이는 모습. 리후는 커다란 창으로 그 모습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문득 그는 뒤도 보지 않은 채 나지막하지만 날카로운 목소리를 내뱉었다.

[누구냐!]

[접니다. 리후 아씨.]

나지막하고 부드러운 목소리. 20년 가까이 들어온 아주 낯익은 목소리였다. 내심 안심한 리후는 입꼬리가 올라간 것이 보일듯말듯하게 웃으며 창에 새로이 비치는 사람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아아 너냐. 연영. 그렇게 갑자기 기척을 드러내면 어떡해. 잘못하면 아무리 너라고 해도 쏠 수도 있다. 다음부터는 주의하도록. 그런데 이 시간에 왠일이지?]

[그게..아씨께 긴히 할 얘기가..]

[그래? 얘기해 보아라.]

리후의 말에도 연영은 쉽사리 입을 열지 않고 머뭇거렸다.

[그것이 아주 긴한 이야기라..]

[그럼 이리 가까이 와 이야기해보아라.]

[네. 아씨.]

연영은 리후에게 다가갔다. 연영의 눈에는 긴박하다는 용건과 어울리지 않게 처연할 정도로 슬픈 기운이 어려있었다. 금방이라도 눈물방울이 툭 떨어져도 결코 어색하지 않을 정도였다. 한발한발 걸음을 뗄 때마다 연영의 눈시울이 점점 붉어졌다.

[연영. 대체 무슨 이야기지?]

[아씨 용서하십시오!]

연영의 폭넓은 소매 안에서 빛이 나와 순간 리후를 스쳐갔다.

[아앗!]

뚝뚝 떨어지며 하얀 바닥을 붉게 적시는 핏방울은 순식간에 조그만 웅덩이를 만들었다.

[연영..무..무슨짓이냐...]

[요..용서하시오 아씨. 이제..때가 되었다는 걸 아씨도 잘 알고 계시지 않았소. 그때가 지금 온 것이오.]

[여..연영...대..대체...왜 네가 이런 일을..]

[아..아씨...죄..죄송...큭...차마 내 손으로 아씨를 찌를 수는 없었소. 잊으셨소? 그 맹세를..내가 죽어도 차마 그 맹세를 깰 수는 없더이다. 헉..언제까지나 아씨를 지키며, 내 목숨 다할때까지 곁에 있겠다던...허억]

[마..말하지 마라. 피가 너무 많이 나잖아! 제발 그만..지혈을 할 수가 없잖아..]

[흐윽..늦었소. 처음부터 살 생각따위 하지 않고 한 일이오. 허튼 짓 하지 마오..]

[내..내가 어찌 이런 네 모습을 보고 가만히 있을 수 있겠어! 여봐라! 게 누구 없느냐! 아무도 없느냐!]

[후..후훗..아무도 없을 것이오...내가..모두 처리 했으니...그만두시오..]

[연영..연영...왜 그런거야!]

[아..아씨도..잘 아시지 않소..내게 묻지 않아도 말이오...]

[젠장...왜 하필 너란 말이냐..어째서...]

[흐읏...하..하나..만..알아주시오..내가 당신을...얼마나..아끼고...소중하게..여겨..왔는지...그리고....어..얼마나...다..당신..을..사..사랑...허윽!]

연영은 헛바람을 삼켰다. 알듯말듯한 웃음을 지으며 연영은 리후의 얼굴로 손을 뻗었다. 그러나 그 손은 채 닿지도 못한채 힘없이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여..연영? 연영? 연영! 뭐야...지금 뭐하는 거야...]

리후는 연영의 손을 잡아 자신의 뺨에 대며 말했다.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는 연영을 감싸안았다.

[연영...왜 대답이 없어..왜....왜....]

리후의 뺨에 맞닿아 있는 연영의 뺨으로 투명한 액체가 흘렀다.

[연영...연영.......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

육중히 닫힌 문 안에서 목놓아 소리 지르는 리후의 처절한 비명이 아무렇게나 시체들이 널려있는 복도를 달려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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