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 1. 8. 07:57

[] 꿈

# 예전에 꿨던 띠동갑이랑 결혼했던 꿈.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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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녀석들 그만두지 못해!]

또 시작이다. 시도때도없이 이렇게 여럿이서 한 아이를 괴롭히는 것이. 귀족의 자제라는 아이들이 대체 왜 이런 짓을 하는지.

[괜찮니?]

다른 아이들이 모두 도망친 후 괴롭힘을 당하던 아이에게 다가가 일으켰다. 어떻게 아이들이 이렇게 잔인한 짓을 하는 것일까. 머리를 물 속에 담그고 여럿이서 꼼짝달싹 할 수 없도록 누르다니. 아마도 귀하게만 자란 아이들이라 남의 고통을 모르기때문에 이런 짓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것이리라.

[...쿨럭쿨럭...]

아이의 등을 두드려서 물을 다 토해내게 했다. 아이의 얼굴은 창백해져 눈이 퀭해져 있었다. 말없이 아이를 꼭 안아주었다. 아이는 내 목에 매달리면서 나즈막히 읊조렸다.

[나는 자학따위 즐기지 않아. 이런 것은 크리스타 녀석이 좋아한단 말이야. 그 녀석이 나보고 이 장난을 하자고 말하라고 부추겼어. 그러면서 내가 말하니까 말한 사람 먼저 하자고 하면서 나를 제일 먼저 시켰어. 절대 내가 하고 싶어서 이런게 아니야.]

어깨가 따뜻해지면서 축축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아이를 더욱 더 꼭 안아주었다.

나는 이 으리으리한 저택에서 가정교사 겸 보모 노릇을 하고 있다. 나이는 올해로 스물두살. 내가 돌보는 아이들은 모두 7명으로 각각 다른 집안의 자제들이다. 나이는 모두 열살. 일곱명 모두 귀족의 자제로 이 저택에 부모와 떨어져 살고 있다. 나는 이들의 부모들에게서 가정교사를 맡아달라는 부탁을 직접 받아 이 일을 하고 있다. 이 아이들은 항상 여럿이서 한 명을 괴롭히곤 하는데 그 대상은 늘 정해져있곤 했다. 방금 전에도 괴롭힘을 당했던 그 아이, 란드베르가 늘 괴롭힘을 당하곤 했다. 금발의 소년으로 상당히 잘 생겼을 듯한 소년이지만 늘 괴롭힘을 당하는 탓인지 삐쩍 말라 창백한 피부에 눈이 퀭해져 다니곤 했다. 하긴. 처음 봤을때 왠 뱀파이어?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 중에 여자아이는 딱 한명이었다. 그 아이 역시 금발로 이름은 크리스틴. 역시나 귀족 자제 다운 생김새로 상당히 예쁜 아이였다. 항상 아이들을 주동하여 란드를 괴롭히는 아이가 크리스타. 검은 머리이며 또래들에 비해 상당히 덩치가 좋아 대장 역할을 하는 아이이다. 그 외에 네명은 그다지 인상이 잘 남지 않아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다. 어쨌든 이 세명이 가장 내 속을 썩이는 아이들이었으니 말이다. 그래도 내게 반항을 하거나 나를 깔보는 일은 없다는게 그나마 다행이다. 하긴 나는 그들의 부모가 직접 임명한 가정교사이며 나 역시 유명한 귀족은 아니지만 귀족집안의 일원 중 하나였으니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이런 일이 있은 이후로 이상하게도 아이들이 란드를 괴롭히는 일은 한동안 없었고 내가 특별히 신경써야 하는 일도 없어졌다. 그저 아이들을 가르치기만 하면 될뿐.

어느 새 이 저택에 머무르며 아이들을 가르친지도 7년이다. 아이들은 어느 새 열일곱이 되어 다들 어엿한 모습을 지니게 되었다. 란드 역시 창백한 모습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어엿한 청년이 되어 있었다. 나는 스물아홉이 되었고 어느 새 아이들에게 노처녀란 소리를 듣곤 했다. 뭐. 처음엔 화도 냈지만 오히려 나중에는 노처녀라는 말에 반응을 보이지 않았더니 아이들도 시들해져 그 말을 하지 않게 되었다. 참 그러고보니 크리스틴과 란드는 약혼을 했다. 내가 가장 성심껏 돌봤던 란드와 내 속을 꽤나 썩이던 크리스틴이 그런 사이가 되다니 조금 놀랍기도 하고 왠지 란드가 너무나 갑작스레 어른이 되어 이제는 내 손에서 떠나간다는 사실이 못내 서운하기도 했다. 크리스타 녀석은 여전히 일곱명 중에 덩치가 가장 컸다. 역시나 공부보다는 무예에 능한 녀석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날 다시금 사건이 터졌다. 아이들이 란드를 다시 괴롭히기 시작한 것이었다. 다들 얌전히 어른이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와장창 소리를 내며 머릿 속에서 산산히 깨져갔다. 한편으로는 눈앞이 아득해지는 것 같았다. 오늘도 왠지 불길한 예감이 들어 황급히 아이들을 찾아다녔다. 한참 돌아다니다가 한 방에 들어가 욕실 문을 여니 맙소사. 예전에 보았던 그 광경이다. 그 건장한 사내아이 다섯이서 란드를 욕조속에 집어넣고 숨도 못쉬게 하는 것이었다. 크리스틴은 멀찍이 서서 그 광경을 지그시 바라보고 있었다. 순간. 머릿 속이 하얗게 비어가면서 뭔가가 내 속에서 툭 소리를 내며 끊어졌다.

[너희들 대체 무슨 짓이야!]

소리를 지르며 아이들에게 달려가자 그들은 나를 보더니 황급히 빠져나갔다. 크리스틴은 천천히 걸어나가다가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서서 나를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

[기억해둬요. 란드는 내 것이야.]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흠칫 놀라며 굳어지고 말았다. 크리스틴은 입가에 새침한 웃음을 띄우며 유유히 방을 나갔다. 서둘러 정신을 차린 나는 바닥에 길게 쓰러져 있는 란드에게 다가갔다.

[오. 세상에. 어떻게 이럴 수가. 란드! 란드! 정신차려 제발...]

란드는 하얗게 질린채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바닥에 꿇어앉은 채로 란드를 일으켜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대게 한 다음 등을 두드려 물을 토해내게 했다. 너무나 겁이 나서 차마 눈물조차나지 않았다. 얼마가 지났을까, 란드가 간신히 숨을 쉬기 시작했다.

'아아...신이시여..감사합니다...'
[으...선생님....]
[그래 란드. 나야. 말할 수 있겠어?]
[쿨럭..조금 힘들지만...죽지는 않을 것 같아요..]
[다행이야..다행이야...]

나는 란드를 꼭 껴안았다. 그제서야 눈에서 마구 눈물이 솟았다. 아아. 란드가 살아줘서 다행이다. 여전히 살아서 내 곁에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이 이토록 다행일 수 없었다.

이 일 이후로 아이들은 은근히 란드를 외면하기 시작했다. 같이 어울리는 것 같으면서도 왠지 냉랭한 태도를 취하는 것이었다. 크리스틴은 늘상 란드에게 신경질을 부리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란드 곁에서 화사하게 웃으며 애교를 떨곤 했다. 아이들의 태도에 신경이 쓰여 몇 번 나무라기도 했지만 이미 클대로 큰 아이들은 내 말에 별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란드와 크리스틴의 결혼식이 얼마 남지 않은 날이었다. 국경 쪽이 시끄럽다는 소식을 듣고도 이 쪽이 변방이 아니라는 사실에 마음을 놓고 있었는데...이 마을도 침략을 당한 것이었다. 마을에 내려가려다가 어수선하길래 서둘러 저택으로 돌아왔더니 이미 성벽을 넘어서 마을에 침략자들이 들어왔다는 것이었다. 혼란스러웠지만 재빨리 저택을 방비하도록 지시하고 아이들을 도망치도록 했다. 그런데 란드가 보이지 않았다.

[왜 너희들 중에 란드가 보이지 않지?]
[란드는 이 저택 가장 깊숙한 곳에 잘 숨겨두었죠. 한번 찾아보시라구요.]

크리스틴이 입가에 조소를 머금고 말했다. 그 얄미운 표정에 피가 거꾸로 솟구치는 느낌이었지만 애써 참으며 모두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도록 지시하고는 열심히 란드를 찾아 저택 안을 달렸다. 달리며 창밖을 보니 마을 여기저기에서 연기와 불길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마음이 조급해진 나는 발이 꼬여 넘어지고 말았다.

[아얏. 크흑...어서 란드를 찾아 대피시켜야하는데...]

발목을 삐었는지 여간 걷는 것이 불편하지 않다. 창밖에서는 뿌연 먼지가 점점 저택쪽으로 다가오는데 이러고 있을 수는 없는데...불편한 다리로 억지로 걸음을 옮겨 저택 가장 안쪽에 자리잡은 탑으로 올라갔다. 수많은 계단을 올라가보니 문에는 자물쇠가 잠겨져 있었다. 아뿔싸. 열쇠가 없는데..다시 열쇠를 가지러 갈 새가 없어서 머리에 꽂힌 핀을 뽑아 이리저리 씨름을 하며 자물쇠를 열었다. 방 안에는 란드가 죽은 듯이 침대에 쓰러져 있었다. 다행히 나쁜 안색은 아니었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방문을 꼭 닫았다. 저택안으로 침략자들이 들어온다 해도 여기까지는 오지 못하리라.

[어...여기가 어디지...]
[아. 깨어났구나.]
[엇 선생님.]
[여기 저택 가장 깊숙한 곳의 방이야.]
[아아..거기로군요. 제길. 잠깐 방심한 사이에 그 녀석들에게 당하다니.]
[지금 상황이 안 좋으니 너는 그냥 여기에 있는 것이 좋겠다.]
[변방이 어수선하다곤 했지만..설마 여기까지 몰려온건가요?]
[응..여기서 대피소까지 가는 것은 무리일 것 같으니 차라리 숨어있는 것이 낫겠다.]
[여긴 도망갈 곳도 없다구요. 차라리 어서 내려가요.]
[...여기까지 올라온 것도 내겐 무리였다구. 발목 좀 보겠니?]
[여기 있는게 낫겠군요.]

그 방에서 란드와 둘 뿐이다. 이렇게 둘만 있는 것은 처음이라 왠지 어색하다. 어색한 침묵을 깨려 란드에게 말을 걸었다.

[저..곧 있으면 결혼하지? 축하해.]
[새삼스레 왠 축하에요. 그래도 선생님한테 들으니 기쁘네요.]

란드는 빙긋이 웃어보였다. 왠지 안심이 되었다. 그러면서도 슬며시 가슴 한켠에서 고개를 내미는 생각. 저 웃음이 내 것이었으면 좋겠다라는 해서는 안되는 위험한 생각. 그 때였다 계단을 올라오는 발걸음 소리가 들린 것은.

[여기까지 누구지? 아이들은 모두 대피시켰는데.]
[글쎄요....]
[란드베르라는 자가 여기있나? 어서 나오도록!]

약간 허스키한 여자 목소리였다. 나는 입술에 손가락을 대며 조용히 하라는 몸짓을 했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여자 목소리는 다시 들려왔다.

[다 알고 왔다. 어서 란드베르를 내놓도록! 그자의 미색이 뛰어나다 들었다. 내가 데려가기 위해 친히 왔으니 순순히 나오너라!]
[허락도 받지 않고 함부로 침입한 주제에 무슨 망언이오! 게다가 곧 혼인을 앞둔 사람을 내놓으라 마라라니 부끄러운줄 알고 썩 물러가시오!]
[호오. 란드베르와 혼인할 여인인가?]
[약혼녀는 아니지만 당신이 하는 얘기는 이치에 맞지 않는 얘기니 어서 물러 가시오!]
[여인이 잘생긴 사내를 탐하는 것이 어찌 이치에 맞지 않단 말이지? 그가 결혼하면 내 손에 영영 넣을 수 없으니 이리 하는 것이다.]
[이 창녀야! 말도 안되는 소리 그만두고 썩 꺼지거라!]
[열을 내는 것을 보니 란드베르의 미색이 정말로 뛰어나긴 한가보군.]

기가 막혔다. 란드를 뒤에 두고 이런 얘기를 듣고 있으니 내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말싸움을 하는 동안 문은 조금씩 흔들리고 있었다. 밖에서 문을 부수려 하는 것 같았다. 나는 조금씩 물러섰다. 문에 조금씩 금이 가고 있었다. 문득 내 어깨에 손이 올라왔다. 뒤를 돌아보니 란드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선생님 너무 걱정 말아요. 다 잘될 거에요.]

란드가 내게 웃어주는 순간 문이 부서졌고 나는 갑자기 정신이 아찔해지며 정신을 잃고 말았다.

내가 정신을 차린 것은 꽤 오랜 시일이 지난 후였다. 익숙한 무늬의 천장이 눈에 들어왔다. 내 방이다. 어떻게 된거지? 문이 열리더니 란드가 들어왔다.

[깨어나셨어요?]
[으응...얼마나 지난거야?]
[일주일이요.]
[말도 안돼...아. 그러면 네 결혼식 날짜 지났구나. 이제 막 결혼한 새신랑이 여긴 왠일이야?]

란드의 얼굴이 굳어진 듯 했다. 내가 말을 잘못한것일까.

[결혼..취소됐어요..]
[왜? 무슨일이 있었길래?]
[좀 길어요..]

내가 쓰러진 후 꽤 많은 일들이 일어났었나보다. 다행히 제때 지원병이 와서 란드가 그 여자에게 납치되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변방에서 떨어진 이곳이 침략당한 것 때문에 수도에서 사람이 왔다고 한다. 그 사람의 조사로 크리스틴이 그들과 내통해서 성문을 열어주도록 한 것이 밝혀졌고, 그것때문에 크리스틴은 추방명령이 떨어졌고, 란드에게는 귀환명령이 떨어진 것이었다. 자연히 둘의 약혼은 파혼이 되었고, 약혼자인 란드까지 처벌받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란드는 혐의가 없다는 이유로 그나마 귀환명령을 받게 된 것이었다. 왠지 눈 앞이 흐려졌다.

[어. 선생님 왜 울어요?]
[응? 아...모르겠어...그만 나가주겠니?]
[아..네..쉬세요.]
[아참. 크리스틴은 언제 떠나니?]
[내일 아침이요.]


조금 무리였지만 크리스틴이 떠나기 전에 그녀가 있는 지하감옥에 가보았다. 언제나 여왕과 같았던 그녀가 축축하고 더러운 감옥에 들어가 있는 것을 보니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엎드려 있던 그녀가 내 발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평소와 같은 약간은 거만한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그래. 내가 이렇게 된 것을 보니 기쁜가요?]
[그럴리가. 너는 내가 가르치는 아이 중 하나야. 내 마음이 편할 리가 없잖아.]
[흥. 이제 란드를 선생님이 갖게 되었잖아요?]
[무슨 소리지? 그는 고향으로 돌아갈텐데.]
[시침떼지 말아요. 선생님이 그를 좋아하는 건 벌써 알고 있었어요.]
[...]
[란드와 약혼하긴 했지만 빈껍데기 인형은 내게 필요없었어요. 내게 필요한 것은 나만을 바라볼 사람이었어요. 란드의 마음은 이미 내 것이 아니었으니까 차라리 내가 갖지 못하면 아무도 갖지 못하게 하려 했어요. 차라리 그렇게라도 해야 편할 것 같았어요.]
[....미안하구나..]
[미안할 것 없어요. 훗. 언제까지나 란드를 괴롭힐 수 있는 것은 나 뿐이에요. 아무에게도 그를 줄 순 없어!]
[..크리스틴..]
[순진한 듯한 얼굴로 그렇게 서있지 말아요. 더 이상 당신 보고 싶지 않아.]
[미안하다...]
[어서 가버려.]

나는 황급히 지하 감옥을 빠져나갔다. 감옥 앞에는 크리스타가 서 있었다.

[네가 여기 왠일이니?]
[저..크리스틴을 따라갈 거에요.]
[응?]
[...제가 크리스틴을 좋아했죠. 그녀는 란드를 좋아했고..그래서 더 란드를 괴롭혔는지 몰라요. 그 녀석이 원체 약하기도 했지만...]
[...여태 몰랐다...]
[선생님 잘못이 아니에요. 어디까지나 제가 선택한 일들이었으니까요. 크리스틴과 함께 가면 힘들겠지만 그것 역시 제 선택이에요.]
[....건강하거라..신께서 늘 돌봐주시기를..]
[선생님도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너희가 모두 떠나면 난 외로울거다.]
[선생님이시라면 저희가 없어도 잘 사실거에요.]


나는 2층 내방 창문가에 서서 밖을 내다보고 있다. 태양은 여전히 세상을 비추고 구름 하나 없는 매우 화창한 날씨였다. 크리스틴은 남루하지만 도도한 모습으로 저택을 떠나갔다. 그 뒤에는 크리스타가 따르고 있었다.

.
.
.

오늘은 란드가 돌아가는 날이다. 원래 란드가 온 곳은 이계. 이 곳과는 다른 차원이었다. 그는 마법진 앞에 서 있었다.

[란드..]
[아. 선생님. 오셨군요. 작별인사도 못하고 떠날까봐 걱정했어요.]
[그랬니? 네게 줄 선물을 챙기느라 좀 늦었어. 자 받아.]
[예쁘네요. 자수정 목걸이와 반지..]
[응. 작별 선물이야. 날 잊지 않겠지? 이걸 보면 생각날테니까. 늘 하고다녀.]
[고마워요. 저는 드릴 선물이 없는데 어쩌죠? 미처 준비를 못하는 바람에..]
[괜찮아. 내겐 너희들과 함께한 시간들과 추억이 있으니까. 그거면 돼.]
[선생님...]
[자 어서가.]
[...안녕히 계세요.]

란드는 마법진 가운데로 걸어들어갔다. 마법진이 발동되자 그의 모습이 밝은 빛에 휩싸여간다. 빛이 강렬해지며 나는 눈을 감고 말았다. 내가 눈을 감기 바로 직전 본 것은 빛나는 그의 모습이었다.

또다시 시간은 흘러 2년이 지나갔다. 가끔씩 란드의 소식을 듣곤 했다. 그는 그 곳에서 잘 지내고 있다고 했다. 나 없이도 잘 지내는 듯한 모습에 조금은 가슴이 아려왔다. 마법구에 저장되어 보여지는 그의 모습은 이 곳에 있을 때보다 훨씬 나아보였다. 나는 마법구를 가방에 집어넣고 다시 냇가로 눈길을 향했다. 나는 여전히 마을에 남아서 마을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었고, 여전히 결혼은 하지 않았다. 오늘은 수업이 끝나고 아이들을 마을 냇가로 데리고 나와 물놀이를 하였다. 난 금새 지쳐서 물 밖 자갈밭에 앉아 아이들을 보다가 문득 란드 생각이 나서 어제 받은 마법구를 꺼내 본 것이었다.

[오늘따라..보고싶네..란드도..다른 아이들도..]
[철썩!]
[꺄악!]

물가에 뭔가가 떨어졌다. 기겁한 나머지 외마디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처음에는 잘 몰랐는데 다시 보니 사람이 쓰러져 있었다. 나는 후다닥 일어나서 그 곳으로 뛰어갔다.

[이봐요. 괜찮아요?]
[아아. 괜찮아요. 선생님.]
[응? 앗. 란드?]
[하하. 돌아와버렸어요.]
[머리색깔이...바뀌었네..]
[아. 이거요? 저절로 바뀌었어요. 목에 걸린 이것때문에.]

란드의 목에는 내가 준 목걸이가 걸려있었다. 그렇다하더라도 그것때문에 머리색이 바뀌다니..

[음..그런데..란드...옷은 어디다 두고 온거니?]
[아아. 이런. 마법진을 사용한게 아니라 제 능력으로 왔더니 이렇게 됐네요.]
[응?]
[거기서도 결혼하라길래 마지 못해 승낙은 했는데 막 시작하려는 순간에 선생님 곁으로 가고 싶다고 생각했더니 이리 온거에요.]
[뭐..뭐야..당장 돌아가. 다들 걱정할거 아냐.]
[어렵게 왔는데 돌아가라니요. 다시는 다른 곳에 가지 않아요.]
[네가 돌아가는게 좋을 것 같다.]
[다시는 떠나지 않아요. 선생님 곁을 다시는 떠나지 않을거라구요. 떠날 수 없어.]
[란드..?]
[당신 곁에 있기 위해 떠나왔어. 다시는 어디론가 떠나지 않을거야. 허락해줘요.]
[란드...]


내 목에는 자수정 목걸이가 걸려있다. 란드에게 준 것과 똑같은 것이었다. 다시는 헤어지지 않기 위해 일부러 란드가 똑같은 것으로 선물해 준 것이었다.

행복하다. 비록 내가 나이가 훨씬 많긴하지만 란드를 사랑하니까. 그리고 란드가 내 곁에 있어주니까. 행복하다. 사랑하는 란드. 고마워. 내게 돌아와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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