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11. 13. 08:08

[] 10월 마지막 날

태연히 나는 교실 책상 위에 걸터 앉아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나의 친구들과 웃고 떠들며.
 
어느 순간 그들의 얼굴이 경직된 것을 느꼈을 때,
날카로운 통증이 등줄기를 후벼팠다.
이윽고 이어지는 목줄기의 예리한 통증.
 
귀청을 찢을 듯한 소리는 기관총의 탄알이 되어 내 몸을 후벼팠고, 총알이 몸에 와 박힐 때마다 피와 살과 뼛조각이 튀면서 내 몸은 제멋대로 경련을 일으키다 책상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굴러떨어지는 동안에도 총알은 여전히 내 등으로 쏟아지고 있었다.
 
너무나 아파서 제대로 생각할 겨를도 없던 그때 겨우겨우 몸을 움직여 책상 밑 공간에 간신히 숨어들었다.
 
'헉헉...떨어지기 전에 스물두발..떨어지며 여덟발..이제 끝인가..'
 
기관총을 든 그는 연신 나를 찾아 헤맸고, 나는 발견되지 않기 위해 몸을 더욱더 웅크려야 했다. 정신이 혼미할 정도의 아픔. 이제 죽는가 하는 생각이 머릿 속을 가득 채웠다. 책상 옆으로는 여전히 사람들이 지나가고 있었지만, 그들은 나를 보지 못했다. 심지어 저기 지나가는 엄마마저도.
 
들키면 정말로 죽는다는 생각에 사람들이 뜸해진 틈을 타 교실 밖으로 기어나왔다. 사정없이 쪼개진 등이 너무나 아팠지만, 바닥을 손톱으로 긁어가며 간신히 나왔다. 로비 문 옆에 잠시 기대어 있다가 이윽고 건물 밖으로 나왔다.
 
내가 있던 건물은 언덕 위에 있었다. 피를 줄줄 흘리며 골목길을 따라 걸었다. 골목 어귀 컨테이너 박스 옆에 종이 박스가 쌓여있는 것을 보았다. 잠시 그 종이 박스들 틈에 숨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될 수 있으면 멀리 가는 것이 현명할 것이라는 판단을 하고 무거운 몸을 다시 움직였다.
 
골목 어딘가에서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무심코 그 쪽으로 걸음을 옮겨 경찰에게 물었다.
'혹시 아름관 쪽에서 실종 신고가 들어왔나요?'
경찰은 왠지 모르게 꺼림찍하게 마음에 걸리는 미소를 입가에 걸며 고개를 끄덕였다. 순간 그들이 손길이 이미 경찰에까지 뻗어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감사하다는 인사를 던지고 다시 발길을 옮겼다.
 
골목을 따라 걷다보니 미술관이 나왔다. 간신히 들어가 반지하층으로 가서 팩스 사용을 요청했다. 친구에게 팩스를 보내고 다시 답을 받는 그 시간이 끔찍하게도 길었다. 이러다 잡히면 어떻게 하나.
 
친구에게서 답신이 도착했다.
 
'니가 슬슬 마음에 들지 않기 시작해서 죽이기로 마음 먹었어. 니가 스무살이 될 때부터 준비를 시작했다고. 내가 말릴 수는 없었어. 미안.'
 
교실 안에 있었던 사람들의 얼굴이 하나씩 스쳐 지나갔다. 나와 얘기를 나누던 친구들, 그리고 나를 기관총으로 갈겨댄 그 사람. 내가 그토록 친구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사람들이 나를 죽이려고 마음먹고 있었단다. 그것도 무려 5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총에 맞았던 등보다 가슴이 먹먹해져 왔다. 너무나 기가 막혀서 울음조차 나지 않았다. 이제 어쩌지. 팩스 용지를 움켜쥐고 미술관 밖으로 나왔다. 길가로 이어진 철제 계단을 천천히 걸어 올라와 남쪽을 보았다. 온통 보이는 것은 빽빽히 들어찬 이층집들의 옥상이었다.
 
'그래...저기를 통해서라도 도망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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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꿈이 끝나고 눈을 떴다.
잠에서 깨서도 가슴이 먹먹해 참을 길이 없었다.
꿈이었지만...정말 소름끼치도록 생생하게 총에 맞은 등이 아팠다.
꿈에서조차 '아, 정말 죽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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