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5. 31. 07:20

[] 허상의 조각, 하나

나는 불현듯 그녀의 눈을 들여다 보았다.
 
그린 듯 우아한 곡선을 그리는 쌍꺼풀.
손을 전혀 대지 않았음에도 오똑한 코.
웃을 때마다 부드럽게 휘어지는 입술.
그리고 적당히 애교있는 밝은 성격.
 
그녀는 어느 곳 하나 흠잡을 데가 없는 팔방미인이었다.
 
그래서였을까.
늘 엇나가기 좋아하는 나로써는.
나로써는.
나는.
 
...
그녀의 완벽한 모습에 흠집을 내고 싶었다.
그 아름다운 눈에 멍이 들도록 주먹질을 하고,
퉁퉁 부어올라 원형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그녀의 콧날을 부러뜨리고,
피로 얼룩져 짓이겨진 그녀의 입술을 바라보며 킬킬대고 싶었다.
 
그러나 소심한 나는, 아니, 소심하다기보다는 지극히 정상적인 사람으로 비추어지고 싶은 나는.
내 마음 속의 어긋난 욕망을 결코 드러낼 수는 없을 것이다.
그저 그녀를 스쳐지나갈 때마다 비릿한 웃음을 한 모금 지어보이는 것 외에는.
 
하지만.
언젠가 붉게 피어오르는 그녀의 피를 볼 수 있는 날이 올 것임을 확신할 수 있다면,
나는 그 날을 위해 기꺼이 내 인생의 일부를 떼어 바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녀의 눈가가 눈물로 얼룩지고,
깔끔한 화장이 번져 얼굴을 타고 내리고,
형편없이 짓이겨진 입술로 제발 그만하라고,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갈라진 목소리를 들을 그 날이 온다면.
기꺼이.
매우 기꺼운 마음으로.
일을 실행할 것이다.
 
잘 손질된 매끄러운 광택이 나는 가죽 장갑을 낀 손으로
찰싹 찰싹 소리가 나도록 그녀의 얼굴을 후려치고,
장갑을 벗어 장갑으로 그녀를 때리고,
그리고 맨손으로 서슴없이 온 몸에 주먹질을 해댈 것이다.
 
이 모든 것은 단지.
그녀에게 흠집이 생겨나는 과정을 보기 위함이다.
 
또, 또, 그 흠집으로 말미암아,
나를 영원히 잊지 못하도록,
세상의 끝까지 나를 그녀의 머릿 속에,
아니 온몸에 그 기억 자체로 새겨두기 위함이다.
절대로 나를 잊지 못하도록.
 
이것이 나의 사랑의 방법이며,
그녀를 영원히 묶어두기 위한 방법이다.
 
그렇지만 용기 없는 나는 언제나 그녀의 주위를 맴돌기만 하며,
언제까지나 좋은 사람인 척만 하며,
내 머릿 속에서만 내 사랑을 되풀이할 뿐이다.
언젠간 내 사랑을 그녀에게 베풀어 줄 날이 오기만을 고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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