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12. 1. 03:14

[] 어떤 사람

그제는 빡옥과 간만에 밤을 지샜다. =) 추석 다음날에 보고, 그 다음에 석진이 결혼식에서도 봤지만 말이지, 뭐랄까. 허물없는 친구들과는 아주 오랜만에 만나도 엊그제 만났다 헤어진 것 같고, 어제 봤어도 오늘 보면 또 반갑고 그리운 그런 느낌들이 있다. 신기하지.

친구 집에 신세지는 하룻밤 삯 겸 맥주 작은 페트와 주전부리를 사들고 왔더랬지. 어느 새 잠든 친구의 친구가 깨지 않도록 소리 죽여 침대에 기댄 채 방바닥에 앉아 나누던 이야기는 우리도 나이를 먹었구나, 친구도 답답한 일 많았겠구나, 우리가 가는 길은 어느 새 달라져 버린 것 같지만, 결국은 다르지 않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하더라.

그렇게 나누던 이야기 중에 어떤 사람이 좋으냐는 질문을 받았다. 쭈, 넌 어떤 사람이 좋으니. 잠시 숨을 고르고, 말을 고르고 이야기를 꺼냈다. 수영을 하다가 말이지, 배영을 하다 말고 물 위에 누워서 떠있을 때 있잖아. 그 때 드는 편안하고도 부드러운, 나를 감싸주는 느낌을 주는 사람이 좋아. 말을 마치고 홀짝 마시는 맥주 한 모금.

맥주 한 모금과 함께, 하지 못하고 삼킨 말은, 마냥 편안하고 부드러운 게 아니라, 수영할 때 힘차게 내 몸을 앞으로 밀어내주는, 머리카락 한 올 한 올 사이로 물이 스쳐 빠져나갈 때 느껴지는 숨이 멈춰질 듯 야릇한 감각을 주는, 몸 구석구석으로 새어 들어와 때로는 몸을 달구고, 때로는 열오른 몸을 식혀주는 그런 물 말이야.

목이 마를 때, 속이 탈 때, 즐거울 때, 힘이 들 때, 언제나 내게 필요한 물처럼 말야.

그리고 내 자신은 불붙여 물 위에 사뿐히 띄워놓은 자그마한 초가 될 수 있도록, 그래서 주위를 밝힐 수 있는 그런 존재로 나와 함께 존재할 수 있는 사람. 서로 따로 있어도 스스로 한 존재가 될 수 있는 사람.

서로 너무 깊숙히 들어가 초는 초대로 꺼지고, 물은 물대로 촛농으로 뒤덮이는 게 아니라, 늘 알맞은 거리에 서서 서로의 손을 잡아주고 서로의 존재대로 있을 수 있게 하는 사람. 나를 잃고, 상대방을 잃게 하는 것이 아니라 늘 조화롭게 있을 수 있는 사람말이지.

말로 못 하고 삼켜버렸던 말이 저토록 길긴 하지만, 사실 내가 원하는 건 단 한 가지. 내가 힘들 때, 그리고 그 사람이 힘들고 지칠 때, 아무말없이 빙긋이 웃으며 손 끌어당겨 품 안에 서로 포옥 안고, 안기고 토닥여 줄 수 있을 것. 그게 사실은 가장 중요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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