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12. 16. 08:10

[] 눈

너의 모습이 아득하게 보일 정도로 쏟아지는 눈 속에서 나는 너의 탐스러운 머리칼을 잡아챘지. 바위벽 아래 무릎까지 쌓인 눈 속으로 너는 내팽개쳐졌어. 지금이라도 너를 끌어안고 입맞추고 싶은 마음과 떨어져 내리는 눈 만큼이나 하얀 네 살결에 주먹질을 하고 싶은 마음이 서로 엉겨붙어 떨어지지 않았던 거야.
 
너라면 무엇을 택했겠니? 누군가에게 너의 존재를 잊을 수 없게 하려면 말이야. 아니면 크기를 가늠할 수 없는 네 사랑을 영원히 기억하도록 하게 한다면? 그래. 내가 그렇듯 너는 내가 아니고, 또 나는 네가 아니지. 그래서 말인데, 내가 어떤 방법을 택하든지 그건 너와는 별개의 일인거야.
 
나는 어찌되던 너를 갖고 싶었어. 하얗게 내리는 눈 속에서 더욱 더 하얗게 빛나던 너의 몸뚱아리와, 겁에 질려 커다랗게 치뜬 너의 검은 눈동자와, 풀려가는 봄날에 개울에 겨우 걸쳐 있는 살얼음처럼 여리디 여린 네 넋까지 모두 가지고 싶었어. 그런 내 마음 앞에 너의 의사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어. 나는 내 마음을 가누기에도 버거운 상태였으니까. 어쨌든 나는 잠시 손을 치켜든 채 멍하니 너를 바라보았고, 너는 순간 생긴 빈틈에도 어찌하지 못하고 두 팔로 몸을 감싸 옹송그린채 모로 누워 그 검은 눈동자로 나를 바라만 보았지. 그 때가 아마 마지막 순간이었으리라고 생각해. 네가 내 곁에 옭아매어지지 않도록 도망칠 수 있었던. 그렇지만 너는 늘 그랬듯이 생각을 멈추어 버렸고, 몸도 함께 멈춰 버렸지. 내가  생각하기에 넌 그랬어. 결국 내 곁을 떠나고 싶지 않았던 거야. 무의식 중에 깔려 있던 그 생각이 너를 멈춰버렸던 거라구.
 
어찌 됐든 너는 온몸으로 내 사랑을 받아냈고, 내 곁에 언제까지나 머물 수 있게 되었어. 나는 지금도 가끔 생각해. 모든 소리를 감싸안아버리던 하얀 눈이 펑펑 내리던 겨울날의 그 산 속에서 있었던 일을. 너를 내 곁에 묶어놓는 질기디 질긴 사슬의 첫 고리가 되어 주었던 그 때의 일을. 넌 아마 잊지 못할 거야. 내가 네 몸 곳곳에 새겨 주었던 나의 존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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